거대한 푸른 잎으로 정성스럽게 감싸 놓은 누군가의 식사는 아기자기한 어린 요정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 어딘가 다급해 보이는 어린 요정은 손안에 들러 있는 도시락을 눈으로 힐끗 보고는
“늦으면 안 되는데....”
라며 중얼거렸다. 급하게 움직이는 발걸음으로 가늠해 보자면 어린 요정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영리한 어린 요정이 자신의 발걸음과 도착지 사이의 시간을 헷갈리는 일은 없을 텐데, 어린 요정의 마음에 불안감은 없어지지 않았다.
“뭐가 불안해?”
누군가 어린 요정에게 질문했다.
“늦으면 안 되니까.”
어린 요정은 누군가의 [질문]에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곳에서는 종종 불분명한 [질문]이 질문을 불쑥하고는 했으니까 이상해할 것은 없지만, 어린 요정에게는 드문 일이기는 했다. [질문]이 어린 요정을 향해 찔러 오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한 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가는 지금의 어린 요정에게는 드문 일이 종종 일어났고, 이제는 평범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급하게 갈 필요는 없잖아.”
“급하게 가지 않으면 정해진 시간에 도착할 수 없어.”
얇은 나뭇가지 하나가 어린 요정의 왼쪽 팔을 살짝 긁었지만, 어린 요정은 푸른 잎 도시락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고개만 까딱할 뿐이었다.
“네가 정한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더 잘 지켜야지.”
“네가 정한 것이라면 잘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어느 부분에서는 그렇지.”
“너 스스로는 통제할 수가 없다는 거야?”
“그렇지 않아.”
새벽쯤에 비가 내렸는지 땅은 물렁물렁함을 넘어서 어린 요정의 맨발을 찐득하게 붙잡았다.
“그렇다면 통제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약간은, 하지만 나 스스로 타협하는 부분이니까 문제 될 건 없어.”
“자신과는 타협하지만, 다른 것과는 타협하지 않는 거야?”
“해야 하니까. 그리고 다른 것과 타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어느 부분에서 협상한 거야. 당연한 거라고.”
평소는 아무렇지 않았던 언덕이지만 급하게 움직이는 어린 요정에게는 그 어떤 산보다 가파르게 느껴졌다.
“왜 그렇게 되는 거지?”
“다른 것과 협상하지 않으면 내가 있을 자리는 잃어버리게 되잖아.”
“네가 가는 곳이 네가 있을 자리야?”
“지금은 아니야.”
언덕의 아래는 군데군데 솟아난 자갈 때문에 어린 요정이 무릎이 좌우로 살짝씩 꺾였다.
“그러면 나중을 위해서 그런 거야?”
“그것도 아니야.”
“그러면 언젠가 있을 자리를 위해 불안함을 가지고 움직이는 거야?”
넓은 평지가 나오자 조금은 편한 상태로 몸을 움직일 수가 있었으나, 어린 요정에게는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중에 있을 자리를 위한 게 아니야. 어차피 자리는 언제나 있을 거지만 그곳에 있다는 확신이 필요해. 확신이 있다면 여유로운 건 그다음에 해도 괜찮아.”
“자리에 확신은 언제쯤 들지?”
“이걸 전달하고 나면.”
어린 요정은 [질문]에 대답하는 중에 자기 손에 들린 푸른 잎 도시락을 휙 들어 올릴까 봐 의식적인 힘을 주었다.
“그걸 전달하고 나면 완전하게 확신이 드는 거야?”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일단은 그럴지도 모르지.”
“합리적이지 않네.”
“합리적인 것은 없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고,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야. 어차피 마음 편하게 지내자고 하는 것들이니까.”
“그럼….”“그만해.”
어린 요정은 숨이 차서 [질문]의 질문에 대답하기 힘들어졌다. 그리고 바위와 줄기가 얽힌 동굴을 보니 대답할 여유는 더욱 없어졌다.
푸른 잎 도시락은 아기자기한 손에서 두꺼운 손으로 전달되었다.
“고맙다.”
요정의 도시락을 받아 든 어른 요정은 다급한 입을 울렁거리며 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얇지만 튼튼한 풀로 꽉 묶여 있던 푸른 잎 뭉치는 어른 요정의 거친 손길에 해체가 되고, 부드럽고 풍성한 먹을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른 요정은 음식 한 덩이를 손으로 뚝 떼어서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
“이제 가봐도 좋다. 여기는 아이가 있을 곳은 아니야.”
음식을 우물거리는 입이 쉽게 알아들을 만한 발음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요정의 영특함은 불분명한 것도 확실하게 짚어 냈다.
어린 요정은 늘어지는 발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어린 요정은 자신의 맨발이 진득한 흙에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을 알고 손으로 털어 내려다가 긁힌 왼쪽 팔을 보며 따가움을 느꼈다.
[질문]이 다시 질문을 위해 어린 요정의 귀를 간지럽혔지만, 어린 요정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비 때문에 물렁물렁해진 땅처럼 흐물흐물한 상태로 말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