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춘 단편선

31.부정

김성훈. 2024. 8. 29. 15:03

“그건 불가능해”
“대체 어떻게 안 거야?”
나는 그에게 말하면서 위에 두 가지 문장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그는 반드시 둘 중 하나의 문장으로 대답했기 때문이다.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화가 아니라 내 말이 그에게 입력이 되면,
[그건 불가능해]
[어떻게 안 거야?]
둘 중 어느 문장이 쏟아지는지 유심히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대화라고 할 수 있는지 나 자신도 고민하게 되지만, 그에게서 삐져나온 가느다란 갈증의 진심을 보면 무심하게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에게서 대답이 나왔는데, 나는 혼자 잡다한 생각을 하느라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의 대답 부분 중 ‘부정’을 들었으니, 나는 그저 변명 없이
“그런가?”
라며 대충 넘겨버리면 되는 일이다. 내가 어떤 말을 했고, 그가 어느 부분에서 부정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네가 일하는 식당 말이야. 거기 직원들은 네가 오토바이에 가게 앞에 세워 놓는 걸 불편해하지 않아?”
그는 입에 바람을 불어 넣다가 푹 하고 뱉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나는 식당 직원들의 표정을 상상해 봤다. 아마
‘맨날 지각하면서 오토바이는 꼭 가게 바로 앞에 모셔 놓네’
‘손님 차가 들어올 자리가 부족하잖아’
‘대체 저런 오토바이는 왜 타는 거야’
같은 생각들이 그들의 눈썹과 입술, 콧등, 그리고 이마 가운데에 고스란히 박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일단 그가 아니라고 하니 그러려니 해야겠지. 그가 한참 생각하다가 별것 아니라는 투로
“사장이 내 오토바이를 보고 언제 산 거냐고 묻더라고. 그것 말고는 없었어”
그의 말을 듣자마자 사장의 불편한 속내가 지금 내 눈앞에서 고스란히 펼쳐지는 것 같았다. 펼쳐진 불편한 속내는 내 신경 몇 개를 살살 긁었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그에게 오토바이를 조금 멀리 세워 놓거나, 출근을 서두르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는 내 대답에 인상을 쓰며 오토바이는 자신이 식당에서 일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고, 지각을 자주 하는 편도 아니라고 했다. 다만 식당의 성질 더러운 매니저가 자신의 지각을 꼬투리 잡으며 짜증을 냈다는 말과 함께
“아주 비열한 사람이야. 모두 그 사람을 싫어해.”
라는 말도 덧붙였다. 식당 매니저가 모든 사람의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그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으나, 물어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다시 몇 번을 부정과 놀람이 반복되는 대답을 하다가
“지난주에….”

라며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여자 동창 이야기를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오래간만에 만난 여자 동창은 그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고, 그도 그날따라 이야기가 잘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는 은근히 그녀와 더 긴 시간을 두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바쁜 일이 있어 다음을 기약했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는데, 나는 지금만큼 그의 콧구멍이 세로로 길게 늘어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주에 교회에 가보려고.”

여자 동창은 일요일마다 동네 교회를 다니는데, 그는 그곳에서 우연한 기회로 그녀를 만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입안에서 움찔움찔하는 것이 튀어나올 것 같아 숨을 들이켜고 잠시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상황과 분리되어 먼 곳으로 뻗어가는 내 시선의 측면에서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손에 잡힌 술잔을 들이마시며

“요즘은 이것만 마시면 얼굴이 너무 부어.”

라며 말했다. 나는 그제야 어딘가로 뻗어 있던 시선을 가져와 그러면 당분간 술을 줄이는 것은 어떤지 물었다. 그는 어딘가로 날리는 것 같은 콧방귀는 끼고

“그건 안되지.”

라며 대답했다. 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다 한참을 그의 부정과 놀람을 듣다가 헤어졌다.
나는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상한 돼지고기가 생각났는데,-아니 사실은 아까 내가 숨을 꾹 참다가 생각이 난 것이지만-그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아마 나는 영원히 말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일요일에 그가 그녀를 만나지 못하는 행운을 얻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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