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춘 단편선

29.날씨

김성훈. 2024. 8. 27. 15:23

차가운 바람이 그의 얼굴에 닿았을 때, 겉면이 뻣뻣해지고 얼얼해지는 통에
“아프군”
이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침을 흘리듯 불쑥 내뱉고는 입을 급하게 닫았다. 얇게 짜인 섬유는 애처롭게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지만, 한 가닥의 섬유도 찬바람의 침투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여 피부와 뼈, 그리고 어딘가까지 움츠러지게 했다. 그럼에도 그는 갈라진 입으로
“안돼 아직”
라며 중얼거렸다. 강추위에 집에 돌아온 그였지만 온기의 충만함을 느끼지는 못하고 냉기의 전면적인 충돌만 피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냉동고에서 냉장고로 들어간 것과 비슷했다. 그는 손을 뻗어 얇은 이불을 몸에 덮고 치아를 딱딱 부딪치며 온기를 부르고 추위를 물러가게 했다. 하지만 온기를 불러들일 수 있는 행위라 한다면 전혀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그는 정말 온기를 초대할 만한 비용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인가. 글쎄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다.
그는 약간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그의 몸에 들어 갈 만한 신선한 물은 전부 흐를 수 없었고, 정지해 있었다. 그는 딱딱하게 고체가 되어버린 물의 상태를 보고 인상을 썼지만,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가죽 소파에 쿡 하고 주저앉았다. 가죽 소파 위는 싸늘하게 죽은 것 같은 냉기가 풍겼다.
“살아 있는 가죽이면 따뜻할 텐데.”
지금 당장은 죽은 누군가에 대해 온기의 부재를 논할 때는 아닐 것 같지만, 그는 그것 말고는 말할 것이 없었다. 혹시 자신이 미약하게 가지고 있던 온기로 또 다른 온기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도 성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순수한 온기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그는 그런 의문을 해결하고자 의미 없이 몸을 움직여 온기를 만들어 내고자 했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몸에 한 줌도 안 되게 남아 있던 온기도 이미 세력을 잃어 차분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온기의 자연스러운 이주를 슬프게 생각하면서도 충혈된 눈으로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았다. 시계의 초침은 둔하게 한 칸 한 칸 움직였는데, 어째서 그것은 그가 원하는 대로 재빠르게는 안 되는 것일까.
“정말 1초인 건가”
그는 시계의 활동마저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동시에 시계의 둔중함을 의심하는 것으로 냉기에 대한 저항 의사를 밝힌 것이기도 했다.
“아직 이지.”
무엇이 아직 일까. 그가 기다리는 시기가 언제인지 알 리가 없지만 그는 억지로 떨리는 몸으로 몸을 꽉 누르려다가 괜히 오른쪽 턱이 약간 뻐근해서 질뿐이었다. 손을 뻗어 오른쪽 턱을 만지려다 손등으로 타고 들어오는 냉기의 침범을 느끼고 재빨리 자기 몸 안쪽으로 감추었다. 그는 가는 실핏줄이 꿈틀거리는 눈으로 시계의 초침을 바라보았다. 느리게 움직이던 시계의 초침은 그가 원하는 골인 지점에 다가올 때쯤 장렬하고 경건한 움직임을 보였다. 초침이 어딘가를 넘어 그의 마음이 살짝 풀어졌을 때쯤, 그는 재빨리 자기 앞에 놓인 검고 어두운 상자에 빛을 넣었다. 그는 살짝 찌푸리며 검은 상자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의 충격에 저항했다. 빛 안에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누군가가 힘겨운 미소를 입에 걸친 채 말했다.
“오늘은 매서운 추위 때문에 온 지역이 꽁꽁 얼었습니다.”

그는 그 말을 듣자마자 완전히 풀려진 마음을 가지고 집 어딘가에 있는 온기를 부르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단단한 물을 부드럽고 흐를 수 있게 하는 따뜻한 일렁거림을 불어 넣었다. 그는 잠시 후 온기의 충만함을, 풀어진 눈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증명하며 손안에는 따뜻한 액체를 움켜쥐고 있었다. 따뜻한 액체가 조심스럽게 그의 입을 타고 들어가자 영원히 얻지 못할 것 같은 온기가 온몸에 채워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채워진 온기는 집안의 온기와 더불어 그의 몸을 꽉 붙들었다. 그는 온기의 그릇 안에 온기를 채우며 입으로 온기를 내뱉었다.

“죽을 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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