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춘 단편선

27.시계바늘

김성훈. 2024. 8. 25. 12:19

“자리가 없네?”

나는 그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내가 앉아 있는 자리를 가늠했다. 3명까지는 넉넉히, 4명부터는 예의 바른 자세가 필요한 크기였다. 나는 무릎을 바짝 붙이고, 더 이상의 말이 들리지 않길 기대했다.

“앉아 있던 사람은 배려심이 부족하다니까.”

그는 당연한 것을 이야기한다는 투로 작게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배려심만큼은 스스로 가늠하기 어려우니까. 나는 무릎에 힘을 더 조이고 자리의 구석에 바짝 다가갔다. 등과 엉덩이가 자리의 각진 부분과 만나니 어떤 모양이 잡히는 것 같았다. 나는 엉덩이가 만들어낸 각진 것을 상상하며 손에 들고 있던 읽을거리에 눈을 고정했다. 그가 말을 걸었다.

“요즘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게 미덕이잖아요? 그런데 배려라는 걸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단 말이야.”

“그런 것 같네요.”

그는 어설프게 끌어낸 내 대답에 흥미를 느꼈는지 자신의 과거를 몇 개 뽑아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업이라는 게 그래요. 나만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옆에 있는 사람들도 잘 따라와 주고, 상황도…. 그러니까 운도 좋아야 하고 그때 그것만 잘 되었으면 아마….”뒷말을 어딘가로 끌고 들어가던 그가 갑자기 낯선 상호를 들이밀며 그것을 아느냐 물었다. 나는 천장에 달린 하얀 전등을 살폈다. 그는 혀를 살짝 차고 말했다.

“그래도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회사였어요. 아무튼 내가 죽어라 하고 노력하고 피땀 흘려 봐야 무조건 잘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그는 그 이후로도 자기 사업의 이야기를 설명해 주었는데, 보이지 않는 커다란 공을 양손으로 안아 이리저리 살피는 것 같은 모양을 하고, 몇 번은 보이지 않는 공 때문에 고개를 조금 버거워하는 것처럼 굴었다. 나는

“그렇네요.”

밖에 하지 않았지만, 그는 대화의 흐름이 일정 범위에 올랐다고 생각했는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이 뭔 줄 알아요?”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건 어떤 방법을 써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이미 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정답을 알려 주었다.

“솔직하지 못한 사람.”

그는 자기 말을 끝내고 이상하리만치 입을 꾹 누르고 나의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치를 보였다. 나는 몇 번 그의 눈빛을 모른 척하다 어색한 고갯짓과 감탄의 흉내를 냈다. 그는 내 반응이 시원치 않았는지 약간 입을 삐죽거렸지만,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의 이야기는 약 1시간가량 지속되었다. 나는 몇 개의 대답을 하다가 벽에 붙어있던 시계의 바늘이 팽팽하게 수직을 이루자,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나의 입에서는 용수철처럼 말이 튀어나왔다.

“가봐야겠네요.”


—--------------------------------------------------------------------------------------------------------------------------------------



그게 그러니까 아마 3년 전. 아니, 3일 전, 글쎄 3시간 전 일이었던가 그랬을 것이다. 대부분 그의 말은 기억나지 않았다. 앞에 이야기한 그는 아마 내가 지어낸 것일지 모른다. 다만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건 그때 시계 속 바늘이 매끈하고 탄력 있었다는 것이다.


'김성춘 단편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29.날씨  (0) 2024.08.27
28.기쁨  (0) 2024.08.26
26.오해  (0) 2024.08.24
25.구조  (0) 2024.08.23
24.착용  (0) 2024.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