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손목 고정 장치가 미세하게 어긋나서 불편했다. 왼쪽 무릎 고정 장치는 헐렁해졌는지 조금만 결렬하게 움직이면 어기적거리며 걷게 되었다. 오른쪽 어깨 골격 부분은 위로 올라가 내가 억지로 당기다 동작이 어설퍼졌다. 어째서 내 기체만 이런 식인지 제작자에게 따지고 싶다. 누군가는 혈세와 공학의 결정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말이다. 최고의 공학자니, 뭐니 해도 결국 파일럿이 만족할 만한 기체는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정비사에게 기체의 결함을 이야기했다. 정비사는 기름이 딱딱하게 박힌 손톱으로 자기 눈썹을 살살 긁으며 말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특별하게 이상은 없어요”
그럴 리 없는데, 정비사의 자격이 되는지 궁금했다. 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제대로 좀 봐요. 나는 죽을 수도 있어요!”
정비사는 눈을 몇 번 껌벅 이더니 알겠다는 대답과 동시에 전체 세부 정비를 할 테니 일주일 동안 임시 기체를 대여하라고 말했다.
임시 대여소는 덩치 큰 남자가 뭔가를 우적우적 씹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서 임시 기체를 대여하고 싶다고 말하자, 남자는 입안에서 씹고 있던 것을 잠시 멈춘 후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서류 작성하세요. 면허증도 주시고요.”
나는 안주머니에서 면허증을 꺼내며 남자의 목소리가 쇳가루가 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서류 작성을 하던 나는 순간 멈칫하고 남자에게 말했다.
“4세대는 없나요?”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4세대가 임시 기체로 내려오려면 1년은 넘어야 할걸요.”
나는 그렇겠다며 중얼거리고 서류 작성 후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는 나에게 확인증을 건네며 말했다.
“2번 창고로 가시면 됩니다.”
2번 창고에는 이제 갓 소년티를 벗은 청년 하나가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있다가 내가 다가가자 반색하며 말했다.
“저도 파일럿이 목표입니다!”
나는 그러냐고 대답하며 탑승할 임시 기체를 손으로 쓸어 보았다. 청년은 내 말에 기죽지 않았는지 힘이 가득 들어간 목소리로
“그게 가장 최근에 정비한 거예요. 부품도 몇 단계 높은 거로 교체해서 4세대랑 기량 차이도 별로 안 날 거예요.”
나는 그에게 기량 차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시간 낭비일 것 같아 그만두었다. 4세대 기체만 못 하지만 확실히 3세대 기체 치고는 쓸 만했다. 나는 그에게 확인증을 건네고 본부로 돌아왔다.
본부에 남아 있던 상관에게 기체 이상과 정비 기간에 대해 보고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는 7호기 파일럿이 반갑다는 듯이 내 등을 손으로 꾹 누르며 말했다.
“아까는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고장 났다고 해서 놀랐잖아.”
하얀 치아를 드러내 약간 들떠서 말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이놈을 보며 가장 불만인 부분이 이런 것이다. 나는 수리 할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약간 큰 목소리로
“그래, 어쨌든 다행이네! 이번 주 안에 발견해서.”
나는 그에게 다음 주에 무엇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말했다.
“대대 단위로 외각 파견을 간데.”
나는 그런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정비 대에 간 사이에 떨어진 명령이라고 말했다.
11월 14일
3세대는 초임 시절에 지겹게 쓰던 거라 다루는데 어렵지 않았다. 다만 관절로 붙어 전달되는 자극이 섬세하지 못해서 나 스스로 반응하는 부분이 둔해졌다. 7호기 놈이 중간중간
“천천히 해 천천히.”
라고 하는 바람에 억지로 더 기체를 움직이다가 발이 꼬여 넘어질 뻔했다. 역시 3세대 기체는 쓸모가 없다. 빨리 내 기체를 쓰고 싶다.
11월 18일
정비가 끝난 내 기체를 받아 들고 바로 훈련실로 돌진했다. 새롭게 정비된 기체가 내 몸에 섬세하게 달라붙어 상쾌함. 마저 들었다. 내 뜻대로 기체가 움직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아마 이 기분 때문에 이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다.
11월 22일
출정식 같은 것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사령관이라는 하는 사람도 마치 이런 날만 기다린 것처럼 멋진 표정을 억지로 얼굴에 끼워 넣느라 지저분하게 자란 콧수염이 불쑥불쑥 움직였다. 사령관은 어째서 어울리지도 않는 콧수염을 고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령관의 수염은 이런 순간에 확실하게 도드라졌다. 오래된 무성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7호기에 그런 사실을 말했는데, 그놈이 풋 하고 웃는 바람에 3호기 선임 파일럿에게 우리 둘 다 눈총을 받았다.
11월 27일
이놈은 이런 기체로 그동안 잘도 운용했다. 기체의 관절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중요한 에너지 순환 장치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 기능을 상실했다. 그럼에도 7호기는 가장 빠르고, 가장 앞에서 움직였다. 물론 지금은 쓸데없는 처연한 표정으로
“재밌진 않네.”
같은 말을 유언이랍시고 하고 있었다.
정말 재미없는 일이다.
12월 3일
지난주에 수리했던 어깨관절 부분이 내 눈앞에 붕붕 떠다닌다. 정비를 제대로 한 것인가. 종아리를 감싸고 있던 보호장치를 보면 정비를 한 것 같기도 한데. 초임 시절부터 급하게 움직이지 말라던 조언을 무시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 아버지를 향해서 그런 짓은 아무 쓸모가 없는 짓이라고 말하지 못해서 그런가. 도저히 모르겠다.
아무것도 없이 조각난 기체만 떠다니는 검은 우주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널브러져 있다.
무엇을 정비해야 했을까.
어떤 것을 고쳐야 나는 살 수 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