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춘 단편선

6.이사

김성훈. 2024. 8. 4. 06:27



이사를 했다. 바뀐 것은 익숙하지 않다는 감각과 정돈된 가구 배치뿐이었다. 이사를 했다는 흔적 같은 것은 어디에도 명확하게 찾을 수 없었다.
일단 나는 새로운 공간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여기는 밝네요.”

어머니는 검게 변한 냉장고 겉면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말씀하셨다.

“그렇지.”

여동생이 급작스럽게 자기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와서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라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약간은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안방에 놓여 있듯이 숨 쉬고 계시던 아버지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것도 좋은데!”

나는 그제야 이곳이 내가 어렸을 적 살았던 집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는 아니었다. 이곳은 우리 가족이 이사를 온 집이고, 나는 이곳에서 과거의 기억을 살짝 떠올렸을 뿐이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급하게 뛰쳐나갔다. 여동생이

“뭐 하는 거야?”

라며 쏘아붙이기는 했지만, 이미 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점에 도착해서 부끄러움은 면한 것 같다.

멀리서 내 집을 보니 마치 거대한 그물망을 대충 잘라 놓은 것 같았다. 나와 가족들이 이사한 곳은 수많은 그물 구멍 중 하나였다. 저렇게 작은 구멍에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내가 살고 있다니. 내가 만약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물의 구멍 몇 개를 툭툭 찢어서 편하게 넓혀 놓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밖에서 어물쩍거리다 밤이 되었다. 나는 분명 무슨 고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고민에 대해 태양에서 질문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태양은 무엇이든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든다. 나의 고민거리도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에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곳에 태양은 없었다.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지만 설명하자면 자신이 없었다. 아무튼 다른 것이 있었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경비원이 나의 어깨를 살짝 누르고

“그건 안 되겠는데요.”

라고 하는 바람에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최대한 침착해야 했다. 새로 이사 온 첫날에 얕보이면 안 되지.

나는 주머니를 뒤져 오래된 풍선껌 하나를 손으로 쭉쭉 펴내며 말했다.

“그럼 안 될까요?”

경비원은 나의 눈을 보는지, 아니면 내 뒤의 어떤 것을 보는지 모르겠으나-아마 태양 대신에 있는 것을 보는 것 같다.-두꺼운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진지한 것은 좋은 일인데, 가끔은 쓸모가 없어요.”


나는 그런 것은 참 필요한 일이라며 눅눅한 풍선껌을 입에 넣었다가 씹을 수 없어 손에 다시 뱉었다. 이사한 집에 함부로 껌을 뱉을 수는 없지.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 집으로 들어가기에 어색해서 귓구멍을 새끼손가락으로 후벼파며 현관문을 열었다.

집에 들어가 가족 중 '아무나'의 명칭을 부르며 거실로 미끄러지듯이 이동했다. 나는 갈증이 나서 냉장고를 찾았지만, 어딘가로 사라졌고, 배가 고파 식탁에 널브러진 비닐봉지 겉면을 손으로 구겨서 내용물을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 내 집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와 말했다.

“먹을 거 없는데요.”

나는 누군가의 말에 잔뜩 실망한 채로 그 집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한참을 뛰다가 걷다가 반복하다가 문뜩 내가 언제 이사를 하였던 것인지 혼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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