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지 마시오*
가끔은 이런 경고판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들어올 사람은
관계자, 침입자,
아니면 '우연한 경우'다.
관계자라면 경고판을 보며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간혹
"너무 삐뚤어졌나?"
라던가
"글씨가 작은가?"
같은 말이나 중얼거리고 경고판을 무시하고 지나가지만, 경고가 생겨난 배경에 대해서 생각하는 건 귀찮은 일이라며 자기 할 일이나 했다. 누군가가 경고판에 대한 보수 작업을 제한 할 때도
"아무렇게나 해. 있기만 하면 되는데 뭘."
이라며 저녁 식사와 함께 먹을 과일 젤리를 점심때 미리 씹으면서 아무래도 리치 맛이 제일 먹을 만하다며 하품이나 한다.
침입자는 경고판의 재질이 너무 두껍다면서 글씨를 지우면 아무 필요 없는 짓이라고 글씨 위에 페인트칠했다. 경고판 색깔에 맞추어서 초록색으로 얇게 칠했는데, 나중에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아서요."
라는 변명을 미리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후에 침입자가 관계자에게 잡혀 심문을 당할 때 이런 준비된 변명이 그대로 쓰였다.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아서요."
관계자는 침입자의 말에 곧바로 경고판을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이런 건 생각도 못 했는데."
하지만 관계자는 당황스러운 중에도 주머니에 있던 복숭아 젤리를 마저 먹어 치웠다. 침입자와 긴 실랑이를 벌이자면 젤리는커녕 물 마실 여유도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의자에 묶여 있는 저 사람이 침입자인지 우연한 실수인지를 알아낼 수가 없다는 게 관계자의 입장에서는 더 골치 아픈 일이었다. 마지막 남은 젤리가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조차
"뭐가 뭐야…."
라며 헷갈렸다.
대체 어떤 근거로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애초에 경고판을 너무 대충 꾸며 놓은 본인 책임도 있지만 이런 부분은 너무 복잡했다.
깊고 복잡한 고민을 하다 보니 관계자의 생각이 조금 다른 부분에서 맴돌고 있었다.
'젤리 한 무더기를 경고판 앞에 두고 리치 맛 젤리를 고른다면 한 번쯤 너그럽게 넘어 가는 것이 좋을까?'
관계자는 이런 문제는 도저히 답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관계자라는 건 언제나 침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침입 한다고 해봐야
"가져갈 것도 없는데."
라고, 남몰래 중얼거리고 침입자 앞에서는 진중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자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런 일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말해야 하지만, 침입자가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니까요."
라고 할 게 뻔하기 때문에 관계자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관계자는
"우연이다. 우연."
이라며 침입자를 향해 자비로운 말을 했다. 우연과 의도된 침입은 도저히 구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은 저녁 식사와 함께 프로야구를 봐야 한다. 분노와 흥분은 그때 쏟아 내야 한다. 관계자는 침입자를 풀어주면서
"이번은 우연이지만…."다음번엔 그렇지 않다고 말하려다 다음번에도 얼렁뚱땅 넘어갈 여지를 남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젤리는 리치 맛이 가장 먹을만해."
라며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