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춘 단편선

7. 천적

김성훈. 2024. 8. 5. 09:11


매의 아가리에 머리가 통째로 들어갔을 때, 남자는 자신과 매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먼저 잡아먹어야 했는데.’


남자는 오래전부터 고민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남자를 놀리듯 주변을 활공하는 그 생명체를 언젠가 잡아먹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자가 매사냥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놓은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공중에 휙휙 움직이는 그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걸 먹어야 하는데….”남자가 매를 잡아먹어야 한다고 결심했던 것은 남자의 아버지가 남자에게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혀.”

라고, 말했을 때부터 꾸물꾸물하게 돋아난 것이다. 그때는 그저 막연하게 남자의 정신없는 마음 안에 한 가닥 줄기로 남아 있었지만, 당장에 징그럽게 움직여 대는 그놈의 날갯짓을 보면 자연스럽게

“역시….”라며 아버지의 말을 확신하는 것이다.
물론 남자가 확신 하는 것이라면 ‘잡아먹는다’라는 부분이지, ‘잡아먹힌다.’라는 부분은 아니었다. 매의 주둥이라고 해봐야 겨우 자기 손바닥보다 작아 보였고, 하늘에 얼룩처럼 떠다니는 그놈의 전체적인 형상을 보자면 도저히 위압적인 기분은 느낄 수 없었다.

남자는 혹시 매가 자신이 공격한다면 기껏해야 손가락 한두 개를 잘라 먹거나, 눈알 하나 정도를 파먹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손가락 몇 개가 없는 삶이라던가, 한쪽 눈이 없는 삶을 상상해 보기는 했다.

그렇기 때문에 매와 불편한 대치를 하는 남자는 생각보다 서툴렀다. 매의 두꺼운 날갯짓 때문에 머릿속이 부풀어 오를 만큼 불안감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행동으로 옮겨서 불안감을 단단한 긴장감으로 바꾸는 경우는 없었다.
가끔 남자는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동그란 해를 보며

“그래, 잡아먹어야 해.”

라며 결심을 키워 냈지만,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

“그런 것을 해서 뭐해.”

라며 결심을 마음 깊숙한 곳에 박아 두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남자가 어딘가에 박아 둔 결심은

‘손가락이나 눈알 한쪽을 파 먹힌다면 꺼내자. 지금은 그럴 필요는 없지.’

라는 신호 체계에 막혀 간단한 의지로는 꺼낼 수 없었다.

이미 어딘가로 흘러간 아버지 영혼이 남자의 주저함 때문에 간신히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잡아먹힌다!”

라고 하더라도 남자는 그저 아버지에 대한 예의를 간단하게 차리고 조금 진지한 표정을 얼굴에 바른 뒤

“예…뭐….”

라고 말하고 끝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매가 남자의 몸에 가까이 왔을 때 남자가

‘왜 이렇게 커?’

라며 절망이 섞인 놀라움을 느끼는 것과, 남자의 머리가 매의 아가리에 통째로 쑥 들어갔을 때

‘내가 먼저 먹어야 했는데….’

라며 후회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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