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춘 단편선

47.요괴

김성훈. 2024. 10. 4. 09:40

1.자신의 매력을 이용해 남을 조종한다.
2. 약속을 쉽게 어긴다.
3.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4. 매사에 냉정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5. 목적 없는 대화를 싫어한다.
6. 모든 인간관계는 득실에 의해 정해진다.
7. 약자에게 함부로 대한다.

이런 것을 요괴의 특징이랍시고 떠벌리고 다닌다니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 .
사실 위에 특징은 요괴와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이 특징이 나오게 된 과정을 생각할 때는 두 가지의 경우로 추측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일을 처리하는데 과정을 설명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평가. 설명할 필요 없이 번쩍번쩍 일 처리 하는 사람을 보고 앞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인과의 사슬을 스스로 끌고 가는 사람은 생각보다 밖에서 구경하는 사람을 위해서 배려 같은 것은 하지 않는 편이다. 일단 인과의 사슬이 일정 통과 지점을 지나기 전까지는 그쪽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시간 차가 맞지 않는 사람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것만큼 시간 낭비는 없다. 만약 생각의 시간차를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설명받는 사람들은 별다른 감흥을 못 느끼고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냐?”

라며 비아냥거리거나,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도 좀 특이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그러려니 한다. 결국 인과의 사슬을 억지로 당겨 붙여 결과가 눈으로 보이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점에 서 있는 사람들은 설명하지 않는다. 당장은 비난받아도 언젠가 결과가 비난을 잡아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두 번째는 갈증이 심한 사람에 대한 평가다. 어떤 갈증에 사로잡혀 감정의 맥을 들키는 것이다. 갈증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스스로 통제하는 모든 것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갈증은 통제의 근원을 잡고 감정을 마구 휘두른다. 그때 주변 사람들은 휘두른 감정의 직접적으로 맞거나 간접적으로 파편을 맞으면 괴로워하며 감정의 근원이 되는 사람을 요괴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요괴가 아니라 자신의 갈증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서툰 사람일 뿐이다. 오히려 요괴는 사람들 안에서 자신의 정체를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부분은 취약하지만, 미움받는 통로에 대해서는 예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능력으로 사회에 녹아든다. 능력이라는 것은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눈으로 보기 좋은 것, 귀로 듣기 좋은 것, 머릿속으로 생각하기 좋은 것, 마음으로 느끼기 좋은 것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그들은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좋은 것처럼 생각되는 의식의 항아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다. 그들이 의식의 항아리를 정교하게 만들어 낼수록 사람들은 탄성을 자아낸다. 마치 감정이라는 불분명한 물질을 분명하게 조각한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에게는 항아리에 맞는 내용물이 없다. 아무리 자신들의 무의식을 뒤져 보아도 알맞게 부어 넣을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식적 항아리를 손에 쥐고 다른 사람의 무의식을 섭취하고 싶어 한다. 만약 자신의 정체가 들통이 나면 항아리에 내용물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상황은 어떻게든 피하려고 한다.
어떤 이유로 요괴가 다른 사람에게 정체가 밝혀지면 사람들은 당황할 것이다. 요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오감으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중에 떠도는 알량하고 저열한 요괴의 특징과 일치하는 것이 없이

‘그런 느낌이긴 했지!’

같은 미약한 기분으로만 결정짓는 편이다. 나중에는 그들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람들에게는 단편적으로나마 이득을 챙겨 주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앞다투어 그들을 옹호하는 경우가 생긴다.

추종하거나 비난하거나, 둘 중 하나의 기준으로 측정해 봐야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봐야 결국

“그렇게 나쁜 건 없잖아.”

같이 조용히 넘어 가는 것이다. 그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에는 만들어진 항아리가 너무 정성을 들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항아리를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 어설픈 요괴도 있다. 어설픈 요괴일수록 들키는 일이 많아지며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들은 이미 요괴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정체가 들키면 그것으로 끝이다. 제대로 된 요괴라면 끝끝내 사람들이 저버리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나에게 물어 볼 수 있다.

“요괴는 나쁜가?”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할 것은 하나밖에 없다.

“나쁜 것은 없다. 좋은 것이 없는 것처럼. 나쁜 것처럼 보이고, 좋은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요괴들은 사람의 무의식을 가져가고 싶어 하는데, 그것은 순전히 스스로 꺼내 주기를 바란다.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는 무의식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는 선악을 구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마음대로 누군가를 휘두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요괴가 만들어 놓은 의식의 항아리를 보고 스스로 무의식을 부어 넣는다.
나는 언젠가 깊게 눌러져 한 개의 점으로 되어 가는 요괴를 발견했다. 그 요괴는 친절했으며 진중하고 깊어 보였다.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타인에 의해 ‘인격자’라는 칭찬을 들으며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그의 부끄러움은 진지해 보였고 진심인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참 무서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신기한 일이다. 그 요괴의 추종자들은 선함과 성실, 노력을 진실로 여겨 높이 칭송했다.
그 요괴는 사람들 사이에서 완벽에 가까운 선인이 되어, 그렇게 보이고, 그렇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중에는 그 요괴의 의식적 항아리를 입으로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대단하게 여긴다. 나는 그 요괴를 비난할 만한 티끌의 무기를 찾을 수 없었고, 그런 마음도 형체 따위를 이루지 못했다.

다만 나는 보았다. 의심받지 않는 것. 의심받을 필요 없는 것. 의심할 필요 없는 것. 자신의 정체마저 잃어버려 알지 못하는 것. 그것이 한가지로 합쳐졌을 때, 그 요괴는 진정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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