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들은 종이나 어떤 기록 장치에 무언가를 적었다.
1
한 전문가는 주름이 심하고 눈가가 휘어진 남자였는데, 나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그러니까 대체 그건 왜 그랬죠?”
라며 윽박지르는 것밖에는 없었고, 나머지는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 용어 같은 것들이었다. 나중에 다른 전문가에게 전문 용어에 관해 물어 보고 그것이 간단한 것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를테면
‘칼자국’
‘살해 동기’
같은 것이었다.
물론 남자가 혼자 중얼거리며 이야기하는 것들이었지만, 나는 그 중얼거림이 거슬렸다.
남자는 입을 앞으로 쭉 내밀고 처진 눈으로 ‘나의 내면을 전부 긁어내겠다..’라는 모양으로 쳐다봤다. 그러고는 급작스럽게 나의 이름을 크게 꾹꾹 눌러 부르면서 지겹게 살해 동기를 물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윽박지르는 전문가인가요?”
라고 물어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튼 이 남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다가 윽박지를 때쯤에 대충 우물쭈물하는 대답하면 되었다.
2
그다음 전문가는 아주 마른 여자였는데, 얇은 입술은 너무 쪼그라들어서 말할 때마다 억지로 쥐어짜는 것 같았고, 머리카락은 정리 안 된 빗자루를 대충 가져다 놓은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눈은 흰자가 뿌옇게 보여서 마른걸레로 급하게 닦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여자는 윽박지르는 남자와는 다르게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냉정하고 음험한 목소리를 짜냈는데, 나는 그것이 남자의 윽박지르기보다 더 한심해 보였다. 여자는 나와 긴 대화를 하지 않았는데도 중간중간 물컵 아래로 눈을 감추면서 물을 마셨다. 나는 여자가 자신의 눈을 물컵으로 가려 댈 때마다 자신의 냉정함에 대해 감탄하고 다시 냉정함을 다짐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여자는 최대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로 질문했고, 사건과 관계없는 내 이야기도 잘 들어 주었다. 나는 그동안 사람과의 대화에 대한 갈증을 겪고 있던 터라 여자와 이야기하는 것이 약간은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여자가 이런 사람이라는 사실에 약간은 불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 이 여자를 밖에서 봤으면 아마 근처에도 다가가지 않았을 텐데. 허수아비로 만든 사람인지, 사람으로 만든 허수아비인지 구별되지 않은 모양을 가졌으니, 나로서는 여자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혹시나 이 여자와 내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누군가가 본다면 너무나 창피할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불쾌감을 느끼며 동시에 내가 누군가를 죽인 살인자라는 사실을 상기하기도 했다.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여자와 즐거운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구나.’
나는 이러한 사실에 갑자기 울적하고 슬퍼져 눈물을 흘렸다. 여자는 나의 눈물에 당황하며 눈물의 이유를 물었다. 나는 그래도 여자를 위해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가 생각나서요.”
여자는 이해한다는 말과 함께 약간은 누그러진 말투로 다정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여자를 더 볼 수가 없어서 다음에 이야기하면 안 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자는 먹다 남은 옥수수 같은 얼굴을 어떻게든 좌우로 쫙 찢어 웃고는
“그렇게 하죠.”
라며 자리를 떴다. 나에게는 정말 괴로운 시간이었다.
3
그다음 전문가는 눈을 뜬 것인지 감은 것인지 구별되지 않은 노인이었는데, 나는 그 사람이 처음에는 여자라고 느꼈고,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노인이 나에게
“나도 남자지만요….”
라며 말하는 바람에 남자인 줄 알았다. 나는 한참 동안 노인의 얼굴과 몸을 뜯어보며 남자의 형태를 찾아내려고 하다가 문뜩
‘뭐가 남자의 특징일까?’
라고 생각이 들어 남자의 특징을 찾는 것을 그만두었다. 내가 노인을 여자라고 생각한 것은 어떤 느낌에 대한 판단이었는데, 형태로 보아서는 어떻게든 남자 여자를 구별할 것이 별로 없었다.
하얀 백발, 네모난 금테 안경, 주름으로 여러 갈래 갈라져 있는 광대뼈, 얇고 느슨한 가죽으로 여러 겹 겹쳐있는 손등, 약간의 때가 탄 오래된 양복까지.
남자이면 남자인 것이고, 여자이면 여자였다. 그동안 내가 생각보다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것에 느낌이나, 감각에 많이 의존한다는 사실을 알아 버린 것이다. 밖에 있었다면 이런 사실은 금방 잊어버리지만, 이곳에서는 작은 것 하나하나가 흥밋거리다.
노인은 앞서 만난 전문가와는 다르게 간단한 질문을 하고, 나의 이야기를 길게 듣는 편이었다. 마치 오래간만에 만난 할머니에게 일주일간 살아왔던 것을 알아듣게 설명하는 것 같았다.
4
세 명의 전문가와 만나면서 그들이 각각 가지고 있던 특징들은 시간을 보낼 때 머릿속으로 굴려 보는 좋은 재료가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 세 사람이 약간 멈칫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악수했을 때였던 것 같은데, 각각 다른 모습을 보였던 세 사람이 내가 가볍게 손을 건네자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저 이야기를 마친 것에 대한 표시로 악수를 한 것인데 말이다. 그들은 약간은 더듬는 모양새로 내 손을 잡고 어설프게 자리를 빠져나갔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나는 살인자이기 때문에 악수도 할 수 없는 것일까.
정말 알 수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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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하나 같이 말하는 그의 특징은 ‘태연했다’라는 것이다.. 스스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고, 당시의 여론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친구를 만난 것처럼 자기 이야기를 재밌게 풀기도 하고, 농담도 했다. 심지어 이야기를 마치면 그는 꼭 악수하였는데,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공포스러웠다고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