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춘 단편선

52.질문

김성훈. 2024. 11. 26. 06:49

늙은 남자는 낡은 건설 자재에 엉덩이를 깔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를 잡은 늙은 남자의 가위 손가락 사이에는 담배 한 개피가 들어 갈만한 깊은 골이 패여 있었다.
늙은 남자는 그저 이곳에서 맘 편하게 담배를 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아니, 그것 말고 늙은 남자가 당장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젊은 남자가 늙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늙은 남자의 담배연기가 젊은 남자의 몸에 달라붙자 젊은 남자는 연기를 손으로 뜯어 어딘가로 흘려보내고 물었다.

“뭐해요?”

늙은 남자는 젊은 남자의 질문에도 담배 몇 개피를 더 태우고는 대답했다.

“쉬잖아.”

젊은 남자는 늙은 남자의 담배연기가 닿지 않는 거리로 몸을 피하고 아무곳에나 앉았다. 늙은 남자는 젊은 남자가 어딘가에 앉은 것을 알고도 담배만 계속 피웠다.

늙은 남자의 담배가 얼마 있으면 바닥이 난다. 담배가 다 떨어지면 늙은 남자는 몸을 벌벌 떨겠지. 그런 일은 항상 있는 일이니까.
늙은 남자는 10개 남짓의 담배를 손가락으로 한 개 한 개 짚어서 세어 보고는 입에 한 개를 물고 불을 피웠다. 늙은 남자는 담배를 꽉 문 채로 젊은 남자에게 질문했다.

“뭐하냐?”

젊은 남자는 허리를 푹 구부려 늘어진 상태로 있다가 늙은 남자의 질문을 받다 상체를 살짝 띄우고 대답했다.

“쉬는 데요.”

늙은 남자는 어느새 끝난 담배 한 개를 밖으로 털어 버리고는 다시 한 개피를 물고는

“그것도 좋지.”

라고 중얼거렸다.

늙은 남자의 손에는 이제 담배 한 개피만 남았다. 늙은 남자는 마지막 남은 담배에 불을 붙이다가 젊은 남자가 있을 법한 위치를 대충 보고는 물어 보았다.

“왜 쉬는데?”

젊은 남자는 늙은 남자의 질문을 받고 이곳이 휴식을 취할 곳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젊은 남자는 그래도

“필요 하니까요.”

라고 대답을 하고는 몸을 움직였다.

늙은 남자는 젊은 남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마지막 남은 담배의 생명을 조심스럽게 태웠다.
늙은 남자의 마지막 남은 담배가 바스라져갔다. 담배의 생명이 그의 입술 끝에서 고개를 꺾어버린 것이다. 늙은 남자는 자신의 입술 끝에 달랑 달랑 거리는 담뱃재를 콧바람으로 털어 버리고는 어딘가로 떠나려는 젊은 남자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왜 그런거야 왜?”

젊은 남자는 늙은 남자의 어설프고 거친 손을 떼어내고 무엇을 물어 보는 것인지 물었다. 늙은 남자는 얇은 실핏줄이 올라온 눈을 하고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아? 왜 그런 거야? 왜?”

늙은 남자는 어째서 젊은 때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저렇게 높은 건물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늙은 남자는 말하는 도중 흥분 하느라 마른기침을 해댔는데, 젊은 남자는 기침의 범위를 가늠하고 몸을 멀찍이 띄고

“그럼 저는 바빠서.”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늙은 남자는 말라빠진 등허리의 우툴두툴하게 올라온 척추뼈를 자기 손바닥으로 쓸어 보고는 말했다.

“왜 그런거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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