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춘 단편선

50.경주

김성훈. 2024. 10. 20. 20:39

왜 나는 고슴도치야? 자동차나 오토바이도 아니고. 말, 타조, 원숭이도 있는데. 이놈은 탈 수나 있는 거야? 가시 때문에 만질 수도 없어.

빨간 트랙에 하얀 레일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6번째. 그나마 다행이다. 8번째라면 슬프다. 그것보다 슬픈 건 없다.
'8번째 누가 있더라.'
"그런 일이 있었어요?"
5번째 녀석이 말을 건다. 나는
"그렇죠."
라고 대답을 하고 5번째가 타고 있는 초록색 말을 봤다. 황금색 갈기, 바닥을 움켜쥐고 있는 튼튼한 다리, 붉게 빛나는 두 눈동자는 작은 태양을 얌전하게 박아 넣은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저걸…."
이라고 말했다. 5번째는 이미 나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는지 4번째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항상 이렇지."
심판이 오늘 새로운 규칙이 생겼다며 손가락을 하늘로 찌르며 말했다. 8명의 선수는 심판 손가락을 주목하며 새로운 규칙을 듣고 있었다. 몇 분 동안 심판이 말하고 있지만, 7명의 선수는 집중하느라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나는 조금 지루해졌다. 새로운 규칙이라는 게 전혀 새롭지 않았다. 몇 년 전에도 있었고, 몇십 년 전에도, 아마 몇백 년, 몇천 년 전에도 있었다. 새롭다고 말하면 새로운 것이겠지. 저런 식으로 말한다면 나는 하루에도 몇천 개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나는
"저런 걸 새롭다고…"
라고 중얼거리다가 심판과 눈이 마주쳐서 입을 다물었다. 심판의 기분을 거슬리게 하면 안 된다. 지난번 경기에서 심판의 곱쓸머리를 비웃었다가 귓바퀴 모양이 규정 위반이라며 탈락한 선수가 있었다.
나는 나머지 7명처럼 진지한 표정을 했다.
심판은 입술을 동그랗게 하더니 말했다.
"출발."
7개의 레일은 급하게 달음질하는 움직임 때문에 출렁거렸다. 나는 고슴도치를 왼쪽 손바닥에 올려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가시에만 찔리지 않으면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억…"
보도블록 하나가 덜컹거리며 물을 쏟아 냈다.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전부 젖었다. 까칠한 천이 내 발을 꽉 감싼다. 고슴도치는 배가 고픈지 코를 벌렁거린다.
"얘가 뭘 먹지?"
나는 밤이나 옥수수를 구해서 고슴도치에게 주었다. 고슴도치는 먹지 않고 있다가 내가 먹으려고 준비한 우유를 먹고 얌전해졌다. 얌전해진 고슴도치가 내 무릎 위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밤을 까먹고 옥수수는 가방에 넣었다. 우유는 됐다. 다음에 먹어야지. 나는 잎이 풍성한 나무 아래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언제 갈 거예요?"
심판이 나의 어깨를 살짝 누르며 말했다. 나는 졸린 눈을 들어서 곱슬곱슬한 심판의 머리카락을 보고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심판은
"하기야…"

라며 자기 안주머니에 있는 맥주를 꺼내서 마셨는데, 나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나서 가방을 뒤적거렸다. 심판은 나의 급작스러운 행동에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심판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바지 주머니를 꼼꼼하게 뒤적거리다가 우유가 상했다고 말했다. 심판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맥주 한 병을 다 비웠다.


'김성춘 단편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52.질문  (1) 2024.11.26
51.머리  (0) 2024.11.25
49.의자  (0) 2024.10.11
48.습득  (0) 2024.10.07
47.요괴  (4) 2024.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