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춘 단편선

39.결합

김성훈. 2024. 9. 12. 09:44

외로움이란 끔찍한 것이지. 대충 치워 버려야 할 것에 언제든지 이유를 붙여서 그대로 두게 되는 것이니까. 나는 손안에 파고드는 손잡이의 차가운 금속 재질이, 언제부터 피부와 구별되지 않은 것인가에 대해
“외로워서 그런 것 아닐까.”
하고 대충 둘러 대기도 했다. 분명 열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 나는 어째서 손잡이를 잡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내 눈앞에 꽉 차게 들어오는 삭막한 문은 그저 문 모양으로 된 그럴듯한 건축물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 손잡이를 잡기 전을 돌이켜 보면 분명 울렁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어영부영 어딘가로 떠다녀서 맥이 빠진 상태였다. 그런데 손잡이를 잡고 힘겹게 당기는 모습을 하자, 울렁거리는 그것이 손잡이에 달라붙어 자기 껍질을 잃어버리고 손잡이에 빨려 들어갔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른다. 울렁거림을 외로움이라 했을 때,-사실 그것이 외로움인지 어딘가에 부딪혀 튕겨 나온 의미 없는 움직임인지는 확인 할 수 없다-손잡이를 잡으면서 외로움을 사라진 것이 된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에서 손잡이를 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은 분명하다. 사실 언젠가부터 느끼는 것인데, 울렁거림을 손잡이에 빼앗긴 대신 무언가 손잡이를 휘감고 나를 당기고 있었다. 물론 내가 손잡이를 당겨 그런 것처럼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손잡이를 오래 잡다 보니 내가 깊이 당겨 잡은 것과, 나를 당기는 것에 대해 약간씩 구별하게 되는 순간이 생기게 된다. 숨을 대충 쉬거나, 아니면 놀라는 일이 아닌데 놀라는 척을 해야 한다거나, 슬픈 일인데 사실 그것을 늦게 알아차리거나 하는 뭐 그런 상황 말이다. 그럴 때면 손아귀에 힘이 슬슬 풀려나도 몸이 살짝 쳐져야 하지만 어째서인지 손잡이에 손이 찰싹 달라붙어 나를 당기는 기분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을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거나 하면 그럴 수 없을 것 같다고 설명하기를 주저하지만, 나는 분명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며 중얼거리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나는 누군가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기 이전에 손가락의 움직임을 위해 누군가는 어떤 적당함을 낸 것 인가 생각했다. 내가 만약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을 짚어 낸다면 나는 어느 정도로 눌러야 하는 것일까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자기가 손가락으로 내 뒷부분을 찍은 것이 말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물었다.
“손이 붙은 거 아니야?”
글쎄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보여?”
나는 누군가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손잡이에 손이 묶인 상태로 얼굴을 뒤쪽으로 꺾었다. 누군가는 내 모습을 보고 말했다.

“불편하지 않아?”

내가 물었던 것에 대해 답해 주지 않으니 말해야 하는 방향에 대해 섞여 버려 혼란스럽긴 했지만, 그것 보다 나는 누군가의 입술만 보게 되었다. 그것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서 있게 된 것 인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 있는 것인지, 아무튼 내 눈에는 인중의 골에 잡힌 어두운 음영까지만 보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말했다.

“조금 불편하긴 해. 그런데 너는 대체 어떻게 서 있는 거야?”

누군가의 도톰한 입술이, 말하기 전에 한껏 모아졌는데 입술 가운데 구멍이 검게 뚫어져 바람 새는 소리가 나왔다.

“아니, 그것 말고 손잡이.”

누군가는 내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 상태로 내가 잘못 이해한 부분을 짚어 냈다. 나는 고개를 억지로 꺾는 것을 포기하고 눈앞에 답답하게 자리 잡은 문을 보며 말했다.

“그런 착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놓아 버리는 데도 노력이 많이 드니까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불편해질 것 같아. 하지만 손을 뗄 생각 없어.”

“왜?”

“이미 붙어 있잖아. 그게 다인 것 같아 이유라고 갖다 붙이는 게 더 쓸모 없어질 것 같아.”

손잡이의 금속이 내 몸속으로 잘게 부서져 들어와 목구멍에 몇 개 달라붙은 것 같았다. 나는 목구멍 안쪽을 긁어낼 수 없으니 그 누군가에게

“저기 있잖아.”

라며 도움을 요청하려다가 내가 남의 목구멍을 긁어야 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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