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은 필요하다.
나는 손바닥을 휘저으며 애처로운 몸짓에 거침없는 사형집행을 이행했다.
"당연하지"
내 몸에 들러붙는 그것들은 이렇게 처리하는 게 마땅하다. 다른 것에 희생은 망설여 지지만, 그것의 희생은 어째서인지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나는 그것을 없애지 않으면 피를 내 주어야 하니까. 그것이 목숨을 걸어야 내 몸에서 일어나는 흡혈의 행위를 넘어갈 만하다.
한 방울 정도의 피라면 그것 하나의 몸체를 수장시키는 것도 일이 아니지만. 사실이야 어떻게 되었든 그것은 알맞은 양의 피만 빨아 먹고 뚱뚱해진 몸으로 느릿하게 달아 나는 것이다. 아마 그것은
"나는 이 정도, 그 이상의 피는 필요 하지 않지만, 네가 나를 죽인다면 받아들일 마음은 있다."
라고, 하는지 모른다.
공정하지 않은 상황 일지도 모른다. 한 방울도 되지 않는 피와 한 개의 목숨. 그러나 둘 다 양보 할 수 없는 선이 있고, 그 선에 마주 섰을 때는 어쩔 수 없는 살육과 희생의 공방이 펼쳐지겠지.
서로 합의된 전장이라면, 무심함과 냉정함은 당연하게 여기고, 쩍쩍 울려 대는 손바닥의 마주침을 받아들여야 한다.
간혹 나는 그것의 흡혈을 넋 놓고 보다가 뒤늦게 손을 움직일 때가 있었다. 그것은 내 손을 온전히 피해 내지 못하고 반쪽의 중상을 입은 채 둥실둥실 떠다녔다. 나는 손안에 굴러다니는 그것의 얇은 팔다리를 손가락으로 쓸어보고,
"이건 아니구나."
라며 중얼거렸다. 나의 느슨함은 그것의 온전한 희생마저 어설픈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것의 희생이 위대한 정신이라서가 아니라, 목숨을 걸었다는 것, 그것은 도저히 어설프게 대응해서는 안 되었다.
또 한번은 그것의 날갯짓 소리가 윙 하며 내 귓가에 파고들자마자 눈을 뜨고, 일단 손바닥만 허공에 짝짝 찍어 냈다. 급하게 손바닥을 움직이니 살짝 숨을 멈추게 되었다. 나는 막힌 숨을 약간 덜어내고, 어딘가에 있을 그것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런데 없다. 그것이 마치 배경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사라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라며 그것을 찾기 위해 고요한 상태를 만들고 익숙한 배경 곳곳을 살폈다.
"어디 있지?"
라고, 말해봐야 정말 그것이 있었는지, 내 귓가에서 바쁘게 날개를 움직인 것이 사실인 것인지 헷갈렸다. 생각보다 집착이 가득한 상태로 그것을 오랫동안 찾아 헤맸지만, 목덜미의 뻐근함을 뒤로하고 포기한다.
그것은 그러니까 느긋하게 상대해도, 다급하게 상대해서도 안 된다. 적절한 긴장과 안정적인 침착함으로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목숨을 걸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