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춘 단편선

14.완벽한 선택

김성훈. 2024. 8. 12. 08:03

그녀에게 있어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자신의 선택이 가장 별로였다는 사실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녀의 귀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걸?”
이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듣게 되는데, 이때 누군가의 불뚝거리는 입술 아래에 감춰진 조롱의 낌새를 그녀는 알아차리게 된다. 감춰진 조롱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도 못하고 그녀의 불쾌감만 스멀스멀 자극하는 때에, 그녀가 선택했던 결과들이 의례 그랬던 것처럼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대 놓고 판명이 나서야 그녀는
“그럴 줄 알았어.”
라며 어금니를 꽉 깨물고 그 자리를 떠나게 된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 선택의 결과물은 과거의 그림자가 되어 그녀의 뒤태에 얌전히 달라붙는데, 그녀는 그림자를 잘라 내는 데 성심과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끊어질 리가 없지. 과거의 선택은 그녀의 깊은 곳에 있는 완전을 향한 갈증과 복잡하게 뒤엉켜 있으니까. 그녀가 완전을 향한 갈증을 포기하지 않는 한 과거의 그림자는 끈덕지게 그녀를 따라다닌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완전을 향한 갈증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까. 관찰하면 그녀의 갈증은 언덕을 향해 차분하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무리 없이 삼키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해결할 수 없을 수 밖에. 차라리 꼭대기를 향해 무의미한 휘적거림으로 허망함이라도 느꼈으면 포기할 만한 한 가닥도 있을 텐데. 그녀는 그저 높게 떠 있을 완전한 물질을 상상하며
“이게 아닌가?”
같은 시행착오만 쌓아 가는 것이다. 어제 선택한 것이 완전한 것이기를. 지난주에 선택한 것이 완전한 것이기를. 작년에 선택한 것이 완전한 것이기를. 또한 방금 선택한 것이 완전한 것이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물론 지금까지의 결과는 당연히 실패. 실망은 덤. 아니, 사실은 실패한 만큼 실망은 쌓이고, 과거의 그림자는 지독해지기만 한다.
그녀는 언젠가 과거의 그림자가 목덜미를 부여잡고, 실망의 덩어리가 온몸에 가득 차고, 완전을 향한 갈증이 통로를 잃고 팽창되는 때에 아무것이나 입에 가져다 넣었다. 명칭은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어딘가의 자리를 순서 없이 차지해 버리는 물질들이 그녀의 몸에 마구 구겨 넣어 졌는데, 그녀는 그것들이 몸으로 들어올 때마다 차라리 모든 것이 한꺼번에 으스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는 했다.
그러나 그녀가 건드린 건 그림자, 갈증, 실망을 지탱하고 있는 가녀린 몸이었으며, 불행히도 그 사실은 그녀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그녀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으스러져 갔지만, 그녀의 귀, 코, 눈, 입, 머리로 그 사실이 들어오지 않았으며 오히려 새로운 선택과 동시에 실망이 빠르게 차오르는 현상에 대해 작게나마 몸을 떨었다.
  어딘가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지만, 그녀는 듣지 못했고, 꾹꾹 눌러 담은 하수구 냄새가 피어올랐지만, 그녀는 맡지 못했고, 이제는 조롱의 증거마저 볼 수 없는 무심한 사람들의 눈을 그녀는 보지 못했고,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 무질서한 물질은 그저 그녀의 입을 통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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