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블록으로 만든 전함을 타고 옥상으로 떨어졌다. 옥상은 문이 닫혀있어 아래층으로는 내려가지 못한다.
매번 이런 식이지. 옥상으로 떨어졌을 때부터
'못 나가겠구나.'
라고, 생각했으니까. 옥상 문이 강하게 잠겨져 있던 것은 아니다. 문고리를 확 잡아 당긴다면 문을 여는 것은 쉬울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으로서 그런 야만적인 방법은 안 된다. 이곳의 관리인을 불러서 정중하게
"하늘이 회색이긴 하지만 문제 될 건 없겠죠?"
라고 한다면 알아들을 텐데. 이 건물의 관리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사실 지난번 전기면도기가 고장 나서 서비스센터에 갔을 때 관리인이라는 사람을 알 수 있었다.
수리기사가 면도기를 확인하고 말했다.
"배터리가 터져서 교체해야 해요."
나는 배터리가 무한한 것이 아니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면도날만 교체하는 게 아니네요."
라며 태연한 척했다. 수리기사는 면도기 안에 있는 배터리를 공구로 쑥 뽑아내며
"모든 건 소모품이니까요.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지난번 어떤 고객은…."배터리가 무한한 게 아니냐며 따졌다는 것이다. 나는 수리기사의 말에 그 고객이 건물 관리인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런 건 관리인이나 쓰겠지.'
라며 전기면도기를 구매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아무튼 관리인도 나처럼 충전식 배터리에 실망하는 것을 알고서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사라졌다.
관리인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면 옥상에서 나갈 방법은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내 눈앞에 관리인이 나타나자마자
"어째서 그런 걸까요?"
라고, 물어보았다. 관리인은 내 말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중얼거리다가 내가 몇 번 더 말을 붙이니까.
"그러니까요. 처음부터 알려주었으면 이렇게 실망하지 않았을 텐데요."
라고, 말했다. 나는 그제야 관리인의 눈을 자세히 보고 이곳을 나가기는 글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