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춘 단편선

18.블루

김성훈. 2024. 8. 16. 09:29

나는 블루의 질문지를 뒤적이며 무엇을 먼저 물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블루가 하품하는 바람에 그쪽을 보고 말했다.

“너무 지루하죠?”

블루는 손바닥을 흔들며 괜찮다고 말했지만,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인터뷰 요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루는 자신의 눈썹을 살짝 들어서 대답을 대신 했는데, 길게 뻗은 눈썹이 내 오른쪽 얼굴을 간지럽혔다. 나는 블루가 신경 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손으로 오른쪽 뺨을 살짝 긁었다. 인터뷰는 블루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는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어요.”

라는 말로 대부분의 이야기를 끝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블루가 몇 살 때 이야기하는 것인지 헷갈려서

“그러니까 그게 13세 때라는 거죠? 아니면 17살 때의 일인가요?”

라는 질문을 나이만 바꾸어 물어보았다. 블루는 내가 물어 볼 때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정정해 주기는 했지만, 헷갈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블루가 고개를 흔들어 댈 때마다 그의 눈썹이 내 오른쪽 얼굴을 간지럽혔다. 내가 무의식중에 오른쪽 얼굴을 너무 긁었는데 직원 하나가 귓속말로

“너무 긁는 것 같아.”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손을 꽉 쥐고, 간지러울 때마다 기침했다. 내 기침 소리에 블루의 이야기가 몇 번 끊어지기도 했다. 블루는 내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저는 항상 고통받았어요.”
“그렇죠.”

블루는 내 대답을 듣고 카드 몇 개를 꺼내 쭉 펼쳐 놓았다. 동시에 내 오른쪽 손등에 그의 팔꿈치가 닿았는데, 블루의 팔꿈치에 돋아난 검은 가시가 내 손등에 그대로 박혀 왔다. 나는 입에서 소리가 새어 나올까 봐 어금니를 꽉 물었다. 블루가 플라스틱 카드에 대해 하나씩 설명할 때마다 가시가 내 손등을 쿡쿡 찔렀다. 사람 크기만 한 말벌이 이런 식으로 침을 쏘아 대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나는

“대단하군요.”

라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고통 때문에 약간 몽롱한 상태가 되었다. 블루는 내 대답과 상관없이 자기 오른쪽 팔꿈치를 들어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기 있는 가시가 위협적이라며 내 가치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려요.”

블루가 오른쪽 팔꿈치를 예고 없이 불쑥 들어 올려서 내 오른쪽 손등에서 어깨 아래까지 쭉 베었다. 셔츠가 찢어지고 피가 배어 나왔는데 블루는 어째서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직원들이 웅성웅성 소리가 귓속으로 들리고 직원 하나가 나에게

“괜찮겠어?”

라고, 물었다. 나는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고개만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블루가 한참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말했다.

“듣고 있어요?”

나는 몸을 살짝 빼며 손을 들어 말했다.

“그럼요.”

오른쪽 팔의 감각이 없었다. 블루는 나의 대답 이후에도 말을 쏟아 냈는데, 내 몸이 오들오들 떨어대는 바람에 나는 “그렇군요” 말고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마저도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몇 개는
“그렇….”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블루는 미간을 좁혀 나에게 불쑥 다가왔다.

“제대로 듣고 있는 거 맞아요?”

블루가 불쾌해하는 것 같지만 나는 대답 할 수 없었다. 블루의 가시가 내 폐를 찔렀기 때문이다. 목구멍에서 피가래가 끓어오르고 숨이 턱턱 막혔다.
무언가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꺽꺽대는 소리만 냈다. 블루는 내 무성의한 대답에 불쑥 일어나 말했다.

“이런 식이에요. 언제나 제 말은 제대로 듣는 사람이 없어요. 그냥 듣는 척하는 거죠.”

블루는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폐를 찔렀던 가시가 빠져나가고 내 오른쪽 쇄골로 다시 찔러 들어 왔기 때문이다. 내 셔츠는 이미 붉은 색으로 푹 절여졌고, 너덜너덜해졌다. 입에서는 거품이 섞인 피가 울컥울컥 새어 나왔다. 직원 하나가 급하게 달려와 블루에게

“잠시 쉬었다 하시죠.”

라고, 말한 덕분에 나는 인터뷰 장소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밖에서 대기 하고 있던 직원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나에게 상태를 물었지만 나는 대답 대신 속에서 올라오는 비릿한 것을 토해냈다.

나는 4일을 기절해 있었고, 일주일째 되는 날 간신히 말 몇 마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10일째가 되어서야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블루와 인터뷰하기 위해서 짐승 가죽이라도 뒤집어쓰고 해야 했는지, 아니면 단단하게 철갑옷이라도 둘러 입고 인터뷰를 해야 했을까. 그러다 문득

“블루를 인터뷰하려면 두꺼운 옷이나 보호구 같은 게 필요해.”

라고, 말하던 동료의 말이 떠올랐다.
그 당시

“그건 블루에 대한 모욕이야!”

라고, 말했던 내 자신이 우스워 혼자 웃다가 또다시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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