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알고 있는 사실이란, 검고 깊은 바다 밑바닥에는 지겹게 타오르는 불덩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주변의 이야기를 전해 듣기로는 누군가 불덩이를 손에 들고 바다를 건너다가
“맞아 이건 뜨거운 거였지!”
라며 알아차리는 순간 바다의 중앙에 떨어뜨렸다는 것인데, 그 이후 불덩어리의 행방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바다에 불덩어리가 잠식되었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알려졌지만
“그런 걸 꺼낼 수 있겠어?”
“꺼내봐야 쓸 수도 없어.”
“이미 식어 버리지 않았을까?”
“식어버린 불덩이는 돌덩이보다 쓸모가 없을 텐데, 돌덩이랑 구분할 수나 있겠어?”
“그럼 어쩔 수 없구나.”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라는 결론이 나왔으므로 그저 당연하게 잊어버린 물건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불덩어리가 잊혀 가는 때에 오히려
“바다에서 꺼내지 않으면 물이 다 말라 버릴지도 몰라.”
라며 불덩어리를 찾기 위해 바다에 배를 띄웠다.
배는 그의 몸에 꼭 맞게 짜여 있었다. 그는
“내 팔꿈치가 이렇게 생겼었나?”
라고 중얼거렸는데, 배 안에 다른 것을 살피지 못하고, 자신의 육중한 몸체 하나만 뜯어 봤다. 그의 한숨 소리가 푹푹 내뱉어졌지만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급작스럽게 아래로 가라앉지도 않았다.
분명 불덩어리는 바다의 가장 검고 깊은 곳에 떨어졌다고 했는데, 검은 곳과 깊은 곳은 구별되지 않았다. 그는 달빛의 은은함을 뚝 떼어서 바다에 비출까 했지만, 보고 싶지 않은 생물이라도 볼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는 역시나 아무 움직임 없이 배에 꼭 채워진 몸채로 손만 꼼지락거렸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든 움직여야 했고 불덩어리가 빠진 검고 깊은 곳을 향해 닿아야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래야만 했다.
노가 없으니, 그의 두툼한 팔로 바다를 휘둘러 앞으로 나아가야 했는데
“누가 내 팔을 먹으면 어떻게 하지?”
라며 그가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의 오들오들 떨리는 목소리는 어딘가에서 들리는 불덩어리의 열기에 의해 타버렸다.
“아무 쓸모 없는 너의 팔을 누가 먹는다는 거야? 혹시 이곳에 뭐라도 건져내면 네 팔이 그나마 쓸모가 있겠지.”
하지만 불덩어리의 말은 그에게 한 가지의 열기로만 전달되어 그의 몸체를 살살 녹였다. 처음에는 팔에 붙은 것, 다리에 붙은 것, 배에 붙은 것, 가슴에 붙은 것, 얼굴에 붙은 것 나중에는 머릿속이나 그보다 깊은 곳 어딘가의 껍질이 녹아 버리고 있었다.
그는 녹아 흐르는 자기 껍질을 보고
“그만하면 안 될까?”
라는 정중한 애원을 했지만, 불덩어리는 그의 애처로운 눈빛을 보고 잠시 가만히 있다가
“일단 그것부터 어떻게 해야겠다.”
라며 그의 눈을 가져갔다. 그는 눈 안에 들어오는 공허한 공기를 느끼며
“그게 없으면 살 수가 없어.”
라고, 간절한 말투로 말했다. 불덩어리는 배를 앞으로 쭉 내밀고 큰소리로 웃더니 말했다.
“지금까지 잘 살았으면서 뭔 소리 하는 거야.”
그의 껍질이 녹아서 바다의 검고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애원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불덩어리는 말했다.
“왜 자꾸 뭘 하려고 해?”
그는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며 입을 움직였다. 불덩어리는 그의 앙상한
몸체를 움켜쥐고
“뭘 자꾸 물어?”
라며 바다의 검고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는 불덩이와 함께 가라앉는 순간 자신의 공기 방울이 위로 떠 오르는 것을 느꼈다. 위로 떠오르는 공기 방울은 달빛의 껍질을 만나 그의 빈 눈구멍을 차지했다. 그는 그때 생각했다.
‘아, 여기는 검지 않구나, 깊지 않구나,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이렇게 밝구나.’
불덩이는 그제야 만족하는 투로 웃었다.
“하여간 오래 걸린다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