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춘 단편선

22.상식

김성훈. 2024. 8. 20. 11:32

상식이라는 것은 단단하면서 유연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이 얼마나 포악한 말인가. 누군가의 생각을 거대한 무언가로 간단히 잘라 낼 수 있다는 것이. 그럼에도 잘려지는 생각은 상식의 칼날에 온전히 순종하거나, 비참하게 도망칠 뿐이다. 혹은 상식의 칼날을 이겨내고 새로운 칼날이 되어 다시 상식의 칼날에 먹혀버린다. 결국 사람이라는 것은 상식의 단단함에 자유로울 수 없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야.”

이 얼마나 온화한 말인가. 가냘픈 생각의 다리가 광활한 건너편에 미처 닿기 전에 결과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제시한다. 마치 ‘상식’이라는 생명체가 생각의 저편에 있는 결과의 모양을 보고

“충분히 함락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라며 충직한 척후병의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이 얼마나 유용한 생명체인가. 나의 힘으로 생각의 다리를 건설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텐데, 누군가 합리와 시간으로 짜놓은 ‘상식’이라는 생명체는 스스로가 빛보다 빠르게 가능성의 활기를 나에게 가져다준다.
불행히도, 다행히도 ‘상식’은 휘두르기 편하다. 어디를 쥐어야 하는지, 얼마큼의 힘으로 쥐어야 하는지, 어느 곳을 향해 뻗어야 하는지, 상식이 끝이 닿는 물질이 어떤 식으로 파괴되고, 변화하는지, ‘상식’적으로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누군가의 마음을 쉽게 얻고 싶다면 ‘상식’이라는 무기를 잘 사용해야 한다. 상식은 누군가의 마음에 문을 여는 ‘마스터키’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검증된 합리, 합의된 생각은 단단하기만 할 것 같은 마음의 문을 쉽게 열어 버린다. 스스로 가지지 못한 생각의 장벽은 상식의 방문에 무기력한 환영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끔은 상식이 가진 만능한 모습 덕분에 누군가의 생명 한 줌까지 얻어 낼 수 있다. 나는 물론 누군가의 밑바닥을 살펴볼 정도로 갈증을 느끼지 않은 덕분에 상식을 끝까지 이용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상식의 유용함을 알고 있는 동시에 위험성도 알고 있었다. 사람은 언제나 ‘상식’적인 인간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보다 몇 겹은 뛰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나,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이나, 혹은 사람들과 섞여 있지 않고 홀로 있는 사람조차도 ‘상식’이 보여주는 선을 알고 있다. 상식이 임의로 그어놓은 선은 사람으로서 보이지 않는 자격을 시험하게 된다.
‘이곳을 살아갈 만한 합의된 인간인가?’
같은 시험 말이다. 이러한 상식에 대한 시험은 나 스스로가 ‘상식적인 인간인가?’ 같은 불안감을 만들게 된다. 이때 상식의 유용함과 사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상식을 가장한 자기 생각을 불안감에 찌를 수 있다. ‘상식적인 인간인가’라는 불안감에 무언가 찔린 사람이

“대체 뭐 하는 짓이야?”
같은 평범한 반응을 보이려 하다가도
“너는 상식적인 인간이 아니야?”
같은 반문에 무참히 깨져버리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가끔은 상식에 저항하는 사람이 있다. 오로지 상식과 반대 되거나 기존의 생각과 전혀 다른 것을 제시한다는 이유만으로 상식을 부수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식을 저항한다는 이유만으로 상식과 비슷한 힘을 가진 것은 아니다. 상식은 오랜 시간 합리와 합의로 이루어진 생각의 산물이다. 겨우 잠시 불편함과 숨겨진 이득을 위해 상식에 저항해 봤자 그 자체의 힘은 바다에 던져지는 눈물 정도 될 것이다. 상식에 저항하는 생각은 그저 상식의 증거를 명백하게 하는 찌꺼기가 될 뿐이다. 상식을 가진 이는 그것을 알고 저항하는 자의 폭발을 부추겨 상식의 망을 뚫고 자신의 추잡한 모습을 드러나게 한다. 결국은

“겨우 네가 원하는 게 그런 거야?”

같은 비참한 말을 듣는 것이다. 상식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상식은 내가 쉽게 꺼낼 수도 있는 무기이지만, 나를 쉽게 찌르고, 무력화할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언젠가 내가 상식의 기습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증명이 되는 것이다.
이미 나는 죽었다는 것, 상식적인 공격을 받을 만큼 상식적인 인간이라는 것, 나는 정상에 가까운 인간이라는 것, 나는 그래서 기뻐해야 한다는 것, 나는 그러므로 괴로워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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