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청소
손으로 툭툭 건드리니 ‘짤랑’이라던가‘철컥’이라는 소리가 났다. 이것을 치워야 이곳을 청소 할 수 있는데.이곳에 가져다 놓는 누군가의 뒷 태를 보긴 했으나, 내가 그 누군가를 향해
“거기는 두면 안돼요”
라고 말하지 못하고
“거기...”
라고 끊어지게 말하는 바람에 누군가는 멈짓 하지도 않고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의 냄새가 남아있어 코를 킁킁 거리며 정체를 추측해 보았지만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 괜히 옆머리만 긁적거렸다. 그냥 두고 간 것인지, 선물 한 것인지, 버리고 간 것인지 구별 할 방법이 있어야지. 이럴 때 시원하게
“치워 버리지 뭐”
라며 이것을 함부로 치워 버리는 무심함이 나에게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이것의 주인이 나에게 찾아와
“여기 있던 물건 못 봤어요?”
라고 말한다면 나는 심장을 콩닥 거리며
“글쎄요...”
라고 말하는 사이에 무심하게 이것을 치워 버린 나 자신을 원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그냥 치워 버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덩그러니 두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위치도 애매하게 놓여 있어 빗질을 하기에도, 걸레질하기도 거슬렸다. 그렇다고 한쪽으로 치워 내자니 불편한 감이 있었다. 사실 방금도 내가 이것을 살짝 건드려 안쪽의 소리를 들은 후, 혹시 상당히 예민한 물건이 들은 것은 아닌가 하고 내 행동을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나중에 주인이 찾아와서
“혹시 물건 건드렸어요?”
라고 말하면 나는
“아니요, 그게 건드렸다기보다는 청소를 하면 치워야 하는데요. 글쎄 그게 거기 있으면 아무래도 제대로 치우지 못하다 보니 아주 살짝 팔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시도를 했던 것 같은데요”
라며 횡설 수설 할 텐데.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오른쪽으로 세발자국만 움직여 있다면 청소하기 수월 했을 텐데, 누군지 몰라도 위치 선정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는 것 같다.
나는 손목에 붙어 있는 시간을 보고 발을 약간 동동거리며 입만 다셨다. 조금만 더 지나면 청소 할 수 있는 시간은 끝이 난다. 그렇게 되면 청소를 제대로 끝내지 못한 상태로 검사를 받을 수 밖에 없다.
검시관은 정해진 시간에 도착 하는 것을 좋아하고, 정해진 청소 상태를 좋아한다. 검시관의 양복 옷깃이 베일 듯이 날이 서있어 손으로 한번 만져 봤으면 어떨까 생각 하다가 안경 뒤에 꼿꼿하게 내보내는 검시관의 시선 덕분에 그만 두었다.검시관은 청소 점검을 한 후에 언제나
“수고 하셨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노력해 주세요”
라고 말하는 편이다. 나는 검시관의 그 정도 평가가 마음에 들었다. 검시관의 이 말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귀에 들려오면 약간 훅 떠 있던 불안감이 푹 하고 편안하게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한 때는 검시관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의례 하는 말이라 생각해서 청소를 소홀히 했던 적이 있었는데, 검시관이 소홀한 부분을 손으로 쿡 찌르며
“이곳은 신경 쓰지 않으셨군요. 다음에 조금 더 노력해 주세요”
라고 말하는 바람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 뒤로 ‘이곳은 신경 쓰지 않으셨군요’ 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모른다.
그런데 만약 검시관이 저것을 보면 뭐라고 할까. 아마도
“이곳을 신경 쓰지 않으셨군요. 다음에 조금 더 노력해 주세요”
라며 신경을 파내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 나는 검시관의 서늘한 안광을 떠올리며 오한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좋지”
라고 해봐야 어떻게 할 만한 방법이 갑자기 떠오를 리 없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그저 간단하게 청소를 하고 그것을 검사 받는 것이 전부인 사람인데. 내 할 일마저 방해를 받아 불필요한 걱정을 해야 하다니,이런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나는 갑자기 기분이 불쾌했고, 불쾌한 것을 감추지 못하고 청소하는 손길을 거칠게 했다.
툭 하며 빗자루 끝이 망가져 목이 꺾였다. 나는 덜렁 덜렁한 빗자루 끝을 휙휙 휘두르며 ‘아무렇게 됐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아무렇게 되어도 문제 될 것은 없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는 결국 제대로 예상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제대로 청소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나의 청소에 대해 은근한 자랑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다른 건 못해도 내가 할 일은 하고 있어”
어째서 나는 그런 간지러운 말을 부끄러움 없이, 그것도 신념 인 것처럼 진지하게 말했을까. 창피한 일이다. 나는 청소를 할 수도.이것을 치울 수도 없다. 이곳이 무너져 내렸으면 좋겠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곳을 청소 하지 못한 이유를 어물쩍거리며 변명 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이상하게 그런 불운한 행운은 필요 할 때 찾아오지 않는 것 같다. 찾아오는 것이라고는 저 멀리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팽팽한 걸음을 보여주는 검시관뿐이었다. 나는 검시관의 깐깐한 몸짓을 보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생각하다가 급하게 몸을 굽혀 이것을 들어 어디론가 던져 버렸다.‘쨍그랑’인지‘철커덕’인지 소리가 났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그것을 치워야 했다. 나는 최소한 검시관에게 청소에 대한 지적만 받고 싶은 거니까. 나중에 물건 주인이 온다면 그때 해결 하면 될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을. 나는 검시관이 완전히 가까이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청소한 흔적을 남기기 휘해 목이 꺾인 빗자루로 열심히 휘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