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2024. 11. 25. 21:39

왕이 나에게 머리를 모아오라고 명령했다. 나는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머리를 모으러 갔다.
머리와 몸을 분리 하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다. 몸 위로 볼록 솟아오른 머리를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으로 비틀어 떼어낸다. 비명을 질렀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얼얼한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굳은살이 베겨서 손가락이 아플일이 없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몸에서 떼어낸 머리는 그물망으로 들어갔다. 그물망에 머리를 처음 넣었을 때는 숫자를 천천히 셌지만, 그물망에 들어간 머리 수가 두자리를 넘어가면서 입으로 세는 건 그만두었다. 대략 '어느정도는 되겠지'라며 생각했다. 과정은 상관없다. 성과는 왕이 판단할 것이다.
그러고보니 왕은 이걸 왜 모으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머리는 고기로 쓸게 없다. 뼈나 힘줄로 뒤덥혀 있어서 억지로 살을 긁어 모아도 엄지손톱 만큼도 안된다. 꼬리처럼 별미도 아니다. 아, 이 동물은 꼬리가 없지. 아무튼 머리만큼은 먹을게 없다.
아침부터 머리를 모았고, 해가떨어졌으니 이제 왕에게 가져가야 한다.
왕이 살고 있는 성 앞에 섰다. 경비병이 번쩍이는 방패와 창을 들고 이것저것 나에게 물어봤다. 나는 경비병이 물어오는데로 성심성의껏 대답을 했지만, 그는 시큰둥한 표정이다. 나중에는 왕의 명령이었다며 말했지만, 경비병은 들은척 하지 않고 창으로 내 그물망을 툭툭 친다. 나는 그물망이 상할까봐 창대를 잡았다. 경비병은 긴장한 표정으로 방패를 들고 내가 잡고 있는 창을 자기쪽으로 당겼다. 나는 손이 상할까봐 창을 놓고 아무 공격의사가 없다는 표시로 손바닥을 경비병쪽으로 보였다. 경비병은 내 손바닥을 한참 보더니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경비병은 덜그덕 거리는 소리를 내며 성 밖으로 나왔다. 그는 나를 보고 그물망을 번갈아봤다. 그는 헛기침을 몇번 하고 왕의 명령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했다. 나는 이제야 그물망에 있는 머리를 처리하고 보상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그물망을 열었다. 경비병은 손으로 코를 막고 나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나는 경비병이 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조금 점잖고 천천히 머리들을 꺼내서 그의 앞에 늘어놨다. 경비병은 이미 멀찍이 떨어져서 그만 되었으니 가보라고 말했다. 나는 지금 가는 건 문제가 안되지만 언제쯤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경비병은 내쪽을 보지 않고 창을 휘둘러 가보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나는 보상에 대한 확인을 받을 때까지 어디에도 갈수 없다고 말했다. 경비병은 인상을 쓰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오랜시간이 지나고 온 몸을 감싼 긴 옷을 입은 누군가 나와서 보상은 지금 당장 줄 수 없지만, 언젠가는 받드시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누군가의 눈을 보다가 그렇다면 머리는 지금 줄수 없다고 말하고 그물망에 그것들을 대충 구겨넣었다. 머리 몇개에 상처가 생겼지만 상관없다. 나는 지금 머리를 처리 할 수 없다면 땅에 묻을 생각이다.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뒤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듣고 싶지 않아서 머리 하나를 꺼내서 귀를 막았다.
얼마후 머리를 땅에 묻은 후 나는 생각했다.
왜 이런걸 가져오라고 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