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우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우산을 잃어버렸다. ‘생각을 해보니’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생각 없이’ 지낸 것일까. 아니, 어쩌면 어딘가에 ‘생각을 뺏긴 것’ 일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식사하며
“우산…. 우산….”이라고 중얼거리는 바람에 아버지의 못마땅한 눈길을 받기는 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다.
나는 방문을 닫고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는 몇 가지를 추려 보았다.
-비싼 우산을 산다.
-손에 묶어 버린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한다.
-비가 온다.
첫 번째 방법 비싼 우산을 산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값진 것이 우산이라면, 나는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돈을 많이 쓴 것에는 어쩐지 신경을 잔뜩 쓰게 되니까. 내가 가진 것 중 우산이 가장 귀하다면 나는 우산을
“이런….”그렇다면 나는 우산을 모시고 다여야 할지도 모른다. 어딘가에 제대로 놓을 수도 없고, 함부로 잡을 수도 없어서 우산 전용 장갑을 사야겠지. 그리고 나는 우산을 보며 매번
“이게 얼마짜린데….”라며 말하겠지. 나는 심지어 비가 와도 우산을 펴내지 못하고 몸으로 빗방울을 맞아대며
“이게 얼마짜린데….”라며 인상을 쓸 것이다. 내가 구겨낸 미간을 상상해 보면 그곳에 우산을 꽂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니까 이 방법은 할 수가 없다.
두 번째 방법은 손에 우산을 묶는 일인데, 편리할 것 같다. 일단 손에는 항상 우산이 있고, 나는 우산을 그러니까…. 우산을…. 잃어버리지는 않겠지. 딱히 무엇이 편리한지 생각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방법도 별로 쓸모가 없는 것 같다. 내가 손에 우산을 묶어서 다닐 때마다
“그걸 왜 손에 묶어?”
같은 질문을 받을 텐데. 나는 이런 질문을 무시하거나 일일이 대꾸를 해줘야 한다.
“유행이야 몇 달 전부터 유행하고 있어.”
라던지
“나는 우산을 잡고 있어야 제대로 살 수 있어 내가 숨을 쉬는데 우산이 큰 역할을 하고 있거든. 큰 산소호흡기라고 해야 할까?.”
같은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혹시나 내가
“우산을 잃어버릴까 봐.”
같은 평범한 대답을 한다면 사람들은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격렬한 불쾌감을 내비칠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무튼 이것도 실패다.
세 번째 방법은 반드시 옆 사람에게 내가 우산을 가졌는지 묻는 것이다.
“나는 우산을 가지고 있어?”
주변에 사람만 있고, 내가 우산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만 있다면 불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그런데 이 방법도 제대로 되기는 글렀다. 나는 반드시 ‘우산’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 생각해 낼지 확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산이라는 단어와 인상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해’라는 것이 대충 채워지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우산이라는 것을 영원히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니, 이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방법은 하지 말아야지.
마지막은 [비가 온다] 방법.
역시 이것만큼 강력한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비가 오고, 나는 우산을 사용하고, 그리고 계속 비가 오면 나는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게 어떠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내 손은 우산을 잡고, 우산은 나의 손에 달라붙어 자기 역할을 한다.
나는 비싼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고,
되먹지 않은 지루한 이유를 만들어 내지 않아도 되고,
우산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아도 된다.
역시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비가 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