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출신
그가 대단한 인물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통통 튀기고 있었다.
“그렇게 되었다는데.”
“그것참 대단하구먼.”
“그런데 그렇게 되었다는 게 사실이야?”
“그렇다던데?”
“그것참 대단하구먼.”
놀라운 일이지. 어수룩한 얼굴로 어울리지 않는 옷가지를 몇 겹 걸치고, 말없이 동네를 왔다 갔다 하던 그놈이 그리 대단해지다니. 나는 그놈과 밥을 먹은 적도 있고, 간혹 장난친답시고 그놈의 등을 손으로 툭툭 치며 머리를 헝클어 놓기도 했었는데. 내가 그놈과 있던 시간을 사람들에게 늘어놓기만 해도 화젯거리가 되겠지. 모두 그놈의 진짜 정체를 궁금해하니까.
사실은 어떤 음식을 즐겨 먹었다더라, 사실은 어느 부분에서는 허술한 것이 있다더라, 사실은 그의 무심함과 매정함 안에는 다정함도 숨어 있다더라 하는 것 말이다. 나는 입이 근질거려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의기양양하게 갈라놓고
“사실은 그런 게 아니고….”
라며 말을 쏟아 내고 싶었으나, 순간 그놈과의 이야기를 함부로 해도 되는가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 이전에 내가 그놈과 막역한 사이는 되는가. 사실 그놈은 나를 상대하느라 본인의 마음을 쓸데없이 낭비한 것은 아닌가. 돌이켜 보니 그놈은 나와 이야기할 때 입을 다물고 눈을 고정한 후 차분하게 듣기만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내 이야기가 그놈의 고정된 모습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내 입에서 어찌나 술술 말이 풀려나오던지 그 순간만큼은 내가 대단하게 느껴지며
‘그래, 이런 말을 하고 싶었는데.’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놈은 내 우쭐함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대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얕은 미소로 감탄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 착각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니 내가 그놈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이 치졸하고 지저분해 보이기만 할 것 같았다. 기름통에 빠진 동전처럼, 찾고 싶지 않은 묵직한 생각이 내 마음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몇 일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늦게 잠이 들거나 일찍 잠이 들거나 상관없이 중간중간 일어나 가슴 쪽을 부여잡고 콩콩 올라오는 심장의 움직임을 느끼다가, 통조림 끝을 박박 깎아 내는 듯한 초침 소리 때문에 물렁물렁한 기분이 진정되지 않았다. 혹시 지금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놈에 대한 질투나 시기에 대한 열기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나는 그런 열기에 사로잡힐만한 노력을 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 부분에서는 미끌미끌한 얼굴로 나 자신을 비웃기만 할 뿐이었다. 치열함을 맛보며 절망의 철퇴에 맞아온 온몸이 저릿해진 사람들이나 빽빽 소리를 지르며 억울해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왕왕거리는 열기와는 거리가 먼 물렁물렁한 기분에 폭 빠져 있었다. 물렁물렁한 기분에 빠져 있을 때는 무엇이든 내 것이 언젠가 빛을 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물렁물렁한 기분에 빠져 있다는 것은 지금도 이어졌는데, 이상하게도 물렁물렁한 기분은 전처럼
‘내 진정한 모습은 아직이야.’
같은 설탕에 절인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푹 감싸지 않고 귀에 들릴 듯 말 듯하게 속삭이는 것을 고스란히 일으켰다.
‘혹시 나도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혹시 나도 치열하게 매달렸으면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보이지 않는 미약한 빛줄기를, 확신에 찬 갈고리로 부여잡고 내 품으로 가져올 수 있지 않았을까.’
‘나도 그처럼, 그보다 대단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잘못된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한동안 물렁물렁한 기분이 만들어 놓았던 천국을 가장한 지옥을 고스란히 경험했다.
나는 푹 들어간 눈으로 그놈의 대단하다는 소리를 지겹게 듣는 중에 귀로 빨려 들어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더 잘 듣기 위해 귓바퀴를 손으로 쓱쓱 닦아내고 들었다.
“그 사람 자손이라는데?”
“어쩐지, 그럴 줄 알았어.”
“대단한 이유가 있었구먼.”
나는 귀에 담긴 것을 쏟지 않고 흩트려드리지 않기 위해 두 귀를 손으로 막고 집으로 달려갔다. 요즘은 워낙 과거의 시간을 찾는 게 쉬워진 때라 그놈의 조상에 대해서도 금방 찾아냈다. 역시 그놈의 조상은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만,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역사를 쓰여 있는 그놈의 조상 행적은 손가락 하나로 가려내면 보이지 않을 만큼 미미했지만, 이름을 남긴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그놈이 나와 같은 시작일 리가 없지.
그건 정말 다행인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