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자기소개
자기를 소개하라는 숙제가 지난번에 주어져서 나는 일주일 동안 생각만 했다.
사람이라는 것과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먹을 수 있다는 것, 배변을 한다는 것, 잠을 잘 수 있다는 것 말고는 할 말은 없는데 말이다.
개인적인 특징을 드러낼 만한 건 어차피 그저께까지 한참 방송하던 드라마나 영화에서 실컷 말해주어서 아무거나 골라서 흉내 내면 될 텐데 너무 어설프면
"그건 그렇게 하는 거 아냐."
라고 누군가 딴죽을 걸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그 누군가에게
'그렇다면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보여주어라.'
라며 당당한 표정을 짓지만
"화장실 가고 싶은 거야?"
라는 소리는 들을 게 뻔했다.
그건 안된다. 무언가를 흉내 낸다는 것은 이렇듯 항상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 것일까. 어렸을 적 할머니 장독대를 팽이로 부숴 버린 것을 말해야 할까.
그때 곤란한 표정을 두꺼비에 뺏겨버리고
"두껍지는 않네요."
라고, 말했던 것을 사람들 앞에서 흉내 내면 딴죽 거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장독대 파괴 사건은 할머니, 나, 두꺼비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혹시나 다른 목격자가 나타나더라도
"그 표정은 잘못됐어."
라고 할 수는 없다. 그때의 표정과 대사는 내 것이다. 아무도 지적 할 수도, 가져갈 수도 없다. 혹시 누군가 어설프게 맞고 안 맞고를 따지게 된다면
"그렇다면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줘."
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다.
장독대 파괴 사건은 어떤 식으로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꺼내 놓기에는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많다.
그렇다면 꿈에 대해 말해야 할까.
나의 꿈은 기억나지 않지만
"13번 버스를 놓쳐서 지각할 위기에 처했는데 어떤 남자가 16번을 타는 게 좋은 듯해서 그렇게 했어요. 그렇다고 지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다행히도 다들 시험을 치르고 있어서 그냥 내 시험 시간만 줄어들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좋을 것 같다. 이것을 내 소개로 하자. 아무도 참견할 수 없고, 해결해야 할 것도 없는 그런 일이니 괜찮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