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우물
우물이 상했다.
나는 우물물을 바닥에 뱉어낸 후 바닥에 그려진 물 자국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왜 상했을까?’
그러나 나는 곧 우물이 상한 이유를 따질 수 없게 됐다. 먼저 그 우물의 가치를 따지는 것이 우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의…. 이럴 수가 나는 우물의 시작점도 짐작할 수 없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를 붙잡고 이 우물을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나를 가볍게 보고는
“그냥 두어야지.”
라고 말했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또 다른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그 사람은 두꺼운 손으로 자기 얼굴을 받치며 고민하더니 말했다.
“글쎄요…. 메워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그건 말도 안 된다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 사람은 인상을 한번 쓰고는 가던 길을 갔다. 나는 또 다른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지 않고
“모르겠는데.”
라고 말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며 따져 물었지만, 그 사람은 걸음을 급하게 하고 떠났다.나는 힘없이 앉아 있다 우물만 쳐다봤다. 우물의 깊은 곳에서부터 살려달라는 무언의 신호가 나에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어야지.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눈에 신비로운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은 고운 옷감, 부드러운 눈매, 가볍지만, 진지한 미소를 걸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무언가에 홀린 듯 빠르게 달려가 그 사람의 소매 끝을 잡고 손으로 우물을 가리켰다. 신비로운 그 사람은 나의 절박함에 눈을 껌벅이며 궁금해했다. 그제야 나는 그 사람의 소매를 놓고 하소연했다.
“저것이요 아버지 아버지의….”
나의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가며 신비한 사람에게 우물의 대단함을 설명했다. 신비한 사람은 나의 설명을 다 듣고 조용하고 묵직한 걸음으로 우물에 다가갔다. 그 사람은 우물의 돌담 부분을 손으로 쓸어 보고 우물 안쪽으로 고개를 쑥 내밀고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양동이로 우물물을 퍼서 자기 손에 뿌려보고는 말했다.
“이 우물은 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본래의 가치를 되찾은 것뿐입니다. 아주 독특하고 대단한 가치를 지녔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우물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것은 저와 우물 주인인 당신밖에 없는 것 같네요. 만약 당신이 이 우물의 진정한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면 용기를 가지고 전하세요. 이 우물은 놀라운 것이라고.”
나는 금방 울렁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기쁨과 어떤 것인지 모르는 불분명한 기분으로 그 사람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아 너무나 서러웠다고 그 사람에게 쏟아냈다. 그 사람은 그럴 수 있다며 나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나는 집 안에 있는 돈을 끌어다 그 사람에게 귀한 것을 먹이고, 귀한 것을 손에 쥐여 주었다. 착하고 의로운 그 사람은 내가 주는 것을 한사코 거절했지만 나는 억지로 그의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나는 천천히 멀어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끝까지 챙겨 본 다음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우물의 가치를 자랑했다. 동네 사람들은 나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몇몇 궁금해하던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우물물을 먹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같이 물을 뱉어내고는 욕하는 게 아닌가. 나는 전처럼 괴로워하지 않고 코웃음을 치며 생각했다.
‘바보 같은 놈들. 이 우물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면서 말이야.’
나는 사람들이 떠난 뒤에 우물물을 퍼서 먹었다. 과연 독특하고 진한 맛이 났다. 나는 어째서 그동안 우물의 가치를 몰랐을까 겨우 지나가던 사람들의 말을 듣고 괴로워했는지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나는 우물물을 한 번 더 들이키며 독특한 그것을 음미했다.
윗집 아저씨가 죽었다. 아니 옆집이었나? 그 아저씨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며
“글쎄 우리 집 우물이 정말 대단하다니까?”
라고, 소리친 쪽이 나의 오른쪽 부분이어서 옆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그 아저씨가 옆집인지 윗집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아저씨가 어제인가 오늘인가 죽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그 아저씨 집을 가자고 졸랐다. 누군가의 마지막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갈 생각이 없는지 입을 쭉 내밀고 말했다.
“그런 멍청한 놈 봐서 뭐 하게.”
아버지는 자기 배를 쓰다듬으며 이상한 거 함부로 먹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죽은 아저씨가 왜 멍청한 짓인지 묻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당부하는 것에 대답했다.
“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