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철학
“그건 상당히 철학적이네.”
남자는 입안 가득 음식물을 씹으며 말했다. 나는 남자가 어느 부분에서 ‘철학’을 느꼈는지 알지 못했지만, 확실한 건 입에 넘치도록 음식이 들어가 있음에도 조금 더 밀어 넣는 그의 손이 애처롭게 떨려 보인다는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감상이나 평가에 반드시‘철학’이라는 단어를 썼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무튼 남자가 ‘철학’이라는 단어를 쓸 때 미간과 입가는 굳어진 것처럼 단단하게 조여졌으며 발음이 뭉개지지 않기 위해 말을 천천히 하려고 애썼다. 신기하게도 음식이 남자의 입안에 꽉 들어찼는데도 ‘철학’이라는 단어는 내 귀에 확실히 안착하였다.
“이게 확실히 철학적 메시지가 있어.”
남자는 간혹 나에게 책을 읽어 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남자가 권하는 책은 요즘 유행하는 글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그러나 어딘가 집어 먹으라는 생각이 간판처럼 불쑥 드러나 있었는데, 딱히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남자는 나에게 책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철학’이라는 단어를 약 8번 정도 했으며, 마지막에도 ‘철학’이라는 단어를 쓰려다가 조금 더 길고 장황하게 표현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는 단어를 모서리가 부딪혀 깨져 나가도록 끼워 넣었다. 나는 그의 노력이 언제쯤 끝나는지 기다리며 깨져서 살짝 벗겨진 나의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남자는 가끔 하늘이나 어딘가 위쪽을 바라보며
“사람은….”이라는 단어로 시작해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또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남자의 말이 끝나길 원한다면 나는 반드시
“그거참 철학적이네.”
라고 말해 주어야 했다. 그럴 때면 남자는 동그랗게 자리 잡은 양쪽의 광대뼈를 눈가 쪽으로 가까이 붙여 웃었는데, 나는 그것이 유원지에서 판매하는 플라스틱 광대 가면 같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화를 참지 못했다. 글쎄 참은 적이 있던가. 남자는 언제나 화를 그대로 쏟아내고 자신의 감정이 만들어 놓은 난장판을 모른 척하고 어딘가로 떠났다. 나는 그런 것을 몇 번을 봤지만, 남자는 화를 내는 신념 같은 것을 바꾸지 않았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니까. 아마 그렇겠지. 남자는 자신의 철학이 있어서 화를 참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나는 남자가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분위기 안에서 내 나름의 호흡법을 가지고 숨을 쉬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철학 없이 화를 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호흡을 하며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도 했다. 혹시나 남자가 분위기 안에 남겨 놓은 철학이 있지 않을까 하고 찾아보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은 남자가 남긴 철학은 찾아내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철학을 가지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남자가 일방적으로 화내는 것을 참지 못했는지 그에게 말했다.
“지금 네 모습이 어떤 줄 알아?”
남자는 누군가의 말에 살짝 움찔하더니 자신이 뱉고 있던 분노의 천 조각을 급하게 걷어 어딘가에 걸쳐 앉았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 또한 보기 좋지 않았다. 나는 남자에게 어설픈 위로를 하기 위해 다가갔는데,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주 철학적인 말이야 그렇지?”
나는 잠시 말없이 있다가 그렇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