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2024. 8. 10. 15:51

보고 말았다.
지난주쯤에 보지 않아서 오늘에서는 드디어 발견하지 않는 것이구나 하면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는 길게 늘어진 가래침을 손인지 뭔지로 쭉 뽑아내고 어딘가를 한참이나 감상하듯이 넋 놓고 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제발…. 그만 좀 해줘.”

그의 왼쪽 골반이 뒤틀어진 채로 “으악!” 이라는 비명이 차분하게 들리는 것 같은데, 그는 귀에 귀지가 딱딱하게 들어찼는지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작은 웅덩이에 오래된 빗물이 차 있는 것 같은 그의 눈두덩이에서 주르륵 눈물이 떨어지는데, 북받치는 감정이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노쇠함이 부르짖는 당연한 신호 같았다.
그는 오늘도 나의 소매를 붙잡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래도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제가요….”라는 시작의 말 정도는 알아들을 수가 있었는데, 오늘은 징그럽게 꿈틀대는 입술 가죽만 보였다. 나는 그에게 아무렇게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요.”

라고 말하고는 도망치듯 빠져나가려 하는데, 그가 붙잡은 내 셔츠 소매가 찢어져 나갔다. 아마 내 셔츠가 너무 오래되어 닳아 버린 것이겠지. 나는 떨어져 나간 소매쯤이야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무릎이 몇 번 꺾이고, 괴상한 춤을 추듯이 몸이 균형을 잡지 못해도, 몸을 날려 들어오는 작은 벌레 몇 개 덕분에 눈을 깜박거려도 나는 멈추지 않고 도망쳤다.
얼마쯤 거리를 벌리고 뒤를 몇 번이나 돌아보고 나서야 나는 잠시 천천히 걸을 수 있었다. 나는 쿵쿵 뛰어대는 가슴을 손으로 부여잡았다. 급하게 뛰어오르는 심장이 뭉툭하게 손을 때렸다. 입에서는 찬 공기와 다급함이 섞인 따가운 숨이 뱉어졌다.
귀신 하나가 내 귓가에

“그렇게 무서워?”

라고, 놀라게 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 귀신의 목덜미를 손으로 틀어잡고 천천히 걸었다. 귀신이 꾸르륵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나는 무시하고 걸었다. 심장을 부여잡고 있는 손으로부터 약간의 진정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좋다!”

나는 앞에서 비비적거리는 좀비 몇 놈의 머리를 주먹만 한 돌로 부수고 지나갔다. 좀비의 내용물이 내 얼굴로 튀었지만, 귀신의 옷으로 닦았다.

“좀 빨아 입어라 냄새나잖아.”

귀신은 내가 목을 꽉 잡고 있어서 사람 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알겠어요.’

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귀신이 버둥거리며 뭐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관심은 없었다.
입 벌린 흡혈귀의 송곳니를 손으로 뿌리째 뽑아내자, 흡혈귀는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라는 억울한 눈빛을 보냈지만, 관심이 없었다.
언제쯤부터 내 눈앞에 있던 전기톱 살인마의 미간에 쇠꼬챙이 하나를 박아 넣었다.
나는 손에 있던 귀신을 어딘가로 던져놓고 양손으로 나의 심장 쪽을 만져보았다.

“이제 괜찮다.”

이제야 완전히 진정되는 것 같았다. 심장의 안정적인 움직임이 나의 기분을 올바르게 잡아 주던 그때

“저기요….”

라며 음습한 동굴에서 천천히 기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안정되었던 심장은 급작스럽게 쿵쾅거렸는데, 나는 덜덜 떨리는 몸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 따라붙은 것일까. 분명 급하게 도망쳤는데. 나는 이제 그를 떨어뜨릴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을 느꼈다.

“무슨 일이죠?”

그는 내 조심스러운 질문에 느릿하게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언가를 꼬물꼬물 움직였다. 무언가를 꺼내는 그의 모습은 주머니에 꼼짝없이 갇힌 손을 탈출시키려 애쓰는 것 같았다. 그의 미간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깊고 어두운 주름들은 그의 탈출 시도에 가늘고 길게 쪼개져 갔다. 그의 미간에서 시작된 주름의 길이 그의 얼굴과 목, 어깨, 무릎, 발가락까지 닿을 때쯤, 그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기쁨의 소리를 냈다. 나는 그것이 사람의 말소리인지, 바위틈 이끼들의 비명인지 헷갈렸다. 그는 천천히 손에 든 것을 나에게 내밀었는데, 나는 어째서인지 그의 손이 내 얼굴로 깊이 박혀 드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단 나는 그 당시 기절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고,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