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악마
요즘 내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건 내 이름이 너무 저급하게 불린다는 것이다.
‘악마 같은 인간….’‘악마 같은 행동….’
내 이름으로 저주한다는 것은 악의 상징으로써 뿌듯한 일이지만, 문제는 너무 하찮은 것에 내 이름을 써버리는 것이다.
내가 저렇게 저급하게 일 처리를 한다는 말인가. 겨우 저런 걸로
“당신은 악마야!”
라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악마가 아니고서는 그럴 수 없어….”라며 얼굴을 부여잡고 절망스러워하다니.
가끔은 인간들의 격렬한 반응에 내가 그렇게 저급하게 일 처리 했었나 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단연코 나는 그런 식으로 일 처리 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인간의 순수한 몰락이다. 결코 자잘한 생채기 따위에 관심을 가질 리 없다.
예를 들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팔꿈치가 까진 아이 하나가 부모에게 쪼르르 달려가
“악마가 그랬어.”
라며 붉게 올라온 팔꿈치를 들이미는 것의 경우가 있다면, 평범하고 정상적인 부모는 아이의 팔꿈치를 보고
“악마는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아. 바닥을 잘 보고 뛰어다녀야지.”
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요즘은 그런 경우보다
“이런 나쁜 악마가 있나!”
라며 생에 모든 분노를 쏟아 내는 부모가 차츰 많아지는 것이다.
나는 그럴 때 답답한 속을 꾹 누르고 아이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말할 것이다.
“나는 절대로 이런 일을 하지 않아. 내가 원하는 것은 너 스스로가 해결하지 못하는 갈증 때문에 나에게 영혼을 팔거나, 남의 영혼을 담보로 네 갈증을 채우기를 바랄 뿐이야. ‘네 영혼이 아주 쓸모없이 변하는 것’ 한 가지만 관심이 있다고. 자잘한 생채기 따위가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지. 나는 인간의 자율적인 파괴를 원할 뿐이다. 그런 것이 아니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몸에서 영혼을 뜯어내 아무렇지 않게 구기거나, 자기 목덜미를 누르고 있는 사신의 낫을 부정하며 발버둥 치느라 인생을 낭비하거나, 또는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서 독극물에 자신의 영혼을 푹 절여 놓거나.
내가 원하는 것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렇게 불쾌감을 드러내는 것이 식사의 부족함 때문은 아니다. 자기 몸을 뜯어 먹는 인간, 죽음을 부정하고 영원함을 추구하는 인간, 어제의 마음을, 고뇌를 없애고 미래의 망상을 끼워 넣는 인간은 끊임없이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들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영혼을 나에게 헌납하고, 남의 영혼을 담보로 자신의 갈증을 채워 간다. 얼마나 훌륭한 먹이김인가. 앞으로도 이런 인간들은 얼마든지 있고, 나의 배를 든든히 채워 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자존심, 혹은 양심, 또는 정당한 규칙을 지키는 것-내가 정당함을 운운하는 것이 의아해할 수 있지만, 규칙을 지키는 것이 더 생생한 영혼을 맛볼 수 있다.-을 생각한다면 불쾌해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저 네가 품은 갈증 때문에 나에게 전부를 헌납하기를 바란다.
어제, 몇 년 전, 최초의, 그리고 오로지 끝에 걸쳐진 갈증. 다른 것은 거절하고 오직 갈증 하나만 긍정하는 때에 삭제되는 다른 뿌리들을 나에게 바치기를 바란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머릿속의 가려움, 가슴 속의 따가움이 너에게만 머무르기를 바란다.
너 스스로 붕괴하는 때에 주변 인간들이 손뼉을 치고 즐거워하기를 바란다.
네 몸만 간신히 들어 갈 만한 굴에 힘없이 빠져서 나의 다정한 손길만 기다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되기를 나는 소망하고 기도한다.
